"섬유전문업체"

IMF시대에 빛을 보는 단어다.

내수부진, 세계적인 수요감소, 공급과잉, 가격급락 등 사면초가 속에서도
불황을 극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바로 "섬유" 외길을 걸어 왔다는 점이다.

지난 한햇동안의 영업실적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증시침체 속에서도 40만원대의 황제주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태광산업,
올 상반기 순익증가율 4백86%를 기록한 성안, IMF이후 오히려 4년만의
최고순익(올 상반기 1백20억원)을 남긴 일신방직, 금융비용부담률 0%의
BYC...

대표적인 IMF극복 기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섬유 한우물만을 팠다는 것.

그렇다고 안이한 경영을 한 것은 아니다.

생산성 향상, 고급 차별화 제품확대, 자사브랜드 개발 등 끊임없이 경쟁력
을 강화해 왔다.

한우물을 파되 "깊이"판 기업들이다.

세계경기가 동반침체의 기미를 보이면서 수출전선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IMF 사태로 내수시장이 무너진 판에 해외수요까지 줄어든다면 한국 섬유
업계에는 탈출할 비상구마저 없어진다.

실제로 올들어 섬유수출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9월말 현재 수출은 지난해보다 7.3%나 줄어든 1백28억달러에 불과했다.

수출물량은 4.6% 늘었지만 단가는 11.3%나 하락한 탓이다.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부진을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섬유업계의
경쟁력 상실이 심각한 수준이란 얘기다.

"섬유업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라는 업계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래서다.

수요감소 공급과잉 가격하락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열쇠는 바로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전문기업이 쥐고 있다.

올해 정부와 민간기업이 손잡고 시작한 섬유업계의 야심작 "밀라노
프로젝트"의 키워드도 바로 고부가가치화다.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향상으로 고급시장을 뚫자는 것이다.

벤치마킹 대상인 이탈리아의 경쟁력도 무수한 전문기업간 밀접한 네트워크
에 있다.

자기분야에서 1등의 품질력을 갖추고 시장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해 가는
전문 중소업체들이 바로 이탈리아 섬유산업의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 원동력
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내 섬유업계의 움직임은 희망적이다.

사업다각화로 힘을 소진해온 대기업들이 IMF를 계기로 부업(다각화 업종)
에서 손을 떼고 본업인 섬유업으로 회귀하고 있다.

효성 코오롱 고합 갑을 신원등 여러 계열사를 거느렸던 그룹형태의 섬유
대기업들이 대부분 섬유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하고 있다.

앞으로는 섬유 하나로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의 총 수출중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3.5%.

단일업종으로는 최고인 1백23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효자산업이다.

한국은 세계섬유교역량의 5.6%를 차지하는 세계 4위의 섬유대국이기도
하다.

불황으로 수요가 주춤한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섬유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95년 4천1백40t이었던 섬유수요가 오는 2005년에는 5천6백10t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매년 3.5%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고급제품에 대한 수요는 훨씬 큰폭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고급시장을 장악하는 기업만이 21세기 생존기업이 될것이라고 전문가들
은 예측하고 있다.

진정한 우량기업은 위기 속에서 오히려 한단계 뛰어오를수 있다고 한다.

IMF시대.

이 단어가 한국섬유업계를 한단계 후퇴시킬 악재가 될지, 도약시키는
호재가 될지는 기업들의 전문성확보 노력에 달려 있다.

< 노혜령 기자 hr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