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의 눈이 순간 번쩍인다.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들고는 "1천3백30에 비드(bid) 5백"하고 알듯 모를
듯한 주문을 외친다.

아무 일 없는듯 모니터에 눈을 박은 그는 잠시후 수화기를 들고 "1천3백40
에 오퍼(offer) 5백".

잠깐 사이에 그는 5천만원의 이익을 챙긴다.

5백만달러를 달러당 1천3백30원에 샀다가 1천3백40원에 되팔아 달러당
10원씩의 이익을 남긴 것.

산업은행 외화자금실의 문성진(35) 대리.

그의 직업은 요즘 젊은이들로부터 전문직종으로 각광받는 외환딜러다.

외환딜러 하면 "0.1초의 승부사" "마이다스의 손" "허가받은 도박사"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문 대리는 "쉴새없이 바뀌는 원.달러 환율추이를 지켜 보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하는 외로운 직업"이라고 털어 놓는다.

5년째 원.달러 딜러로 일하는 그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을 대표하는 프로이다.

외환시장은 누군가 이익을 보면 거꾸로 손해를 보는 사람이 반드시 있는
제로섬(zero sum)법칙이 지배하는 곳.

정글과도 같은 외환시장에서 문 대리는 연간 수백억원이상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그가 하루에 샀다 팔았다 하며 주무르는 달러화의 규모(포지션)는 1억~2억
달러정도.

외환시장에 참여하는 다른 딜러들보다 3~5배 정도 많다.

그의 손에 의해 외환시장이 좌지우지되곤 한다.

간혹 시장이 한방향으로 치달아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없을 경우엔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매수주문을 내 매매가 이뤄지도록 하는 시장조성자(market
maker) 역할도 한다.

서울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산업은행에 입행한 문 대리는 조사부 인사부
등에서 근무, 평범한 은행원으로 지내 왔다.

그러던 지난 94년 그의 침착함과 성실함을 높게 평가한 직장상사에 의해
발탁, 화려한 딜러로 변신했다.

산업은행 인호 비서실장은 "순간 판단이 빠른데다 침착하기도 해 "이놈에게
맡겨 놓으면 적어도 손해를 보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해 딜러를 시켰다"고
발탁당시를 회상한다.

인 실장의 판단은 그대로 들어맞아 문 대리는 타고난 배팅감각을 바탕으로
대표딜러로 변신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야간으로 졸업,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렇지만 해외 유수대학의 경영학석사학위(MBA)나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춘 다른 금융기관 딜러들을 압도하고 있다.

순간 판단력이 뛰어나야 하고 승부근성과 체력이 바탕이 돼야 딜러로
성공할 수 있다는 문 대리는 판단이 틀린 것을 인정하고 손절매(손해보고
되파는 행위)할 때가 딜러로서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지난해 외환위기때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환율을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로 수익성은 접어둔채 달러매도에 나섰지만 치솟는 환율을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IMF(국제통화기금)체제로 넘어가게 된게 가장 가슴쓰라린
기억이라고.

외국계 은행에서 억대의 연봉으로 유혹하지만 문 대리는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한다.

그를 키워준 은행에 보답하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헤지펀드 등 선진국
딜러들과 대등하게 겨뤄 보고 싶다는 승부욕 때문이다.

딜러로서는 연장자축에 들어가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된것도 같지만 아직
할일이 남아 더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한다.

"제가 딜러로 있을 때 IMF체제가 시작됐으니 종료시점까지 외환시장을
지켜야겠어요. 그래야 일말의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서 빨리
IMF체제가 끝나고 우리 원화가 국제통화로 인정받아 전세계 딜러들에게
원화시세를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 정태웅 기자 reda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