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와 LG반도체 간의 반도체 빅딜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두 회사의 합병을 강요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강제합병시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는데다 최근 세계 반도체산업환경이
크게 달라져 빅딜의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빅딜무용론은 재계
뿐만이 아니라 산업전문가들 사이에서까지 공론화될 정도로 힘이 실리고 있는
추세다.

두 회사는 이달말까지 합병회사의 책임경영주체를 확정키로 하고 실사작업
을 맡을 컨설팅업체를 지난달 26일까지 선정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시작단계에
서부터 팽팽히 맞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 열리는 제5차
정.재계간담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정부당국은 반도체 빅딜무용론이 반도체가 구조조정대상에 포함됐을 때
이미 거론돼 충분한 검토를 거친 것이므로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재론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당시 이미 반도체는 다른 업종과 달리
합병해봐야 큰 실익이 없다는 회의론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구조조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산업경쟁력 강화에 있다면 경쟁력에
결정적 영향을 줄수 있는 환경변화를 무시하고 일을 추진해선 안된다.

최근의 세계반도체경기 회복세는 연간 총수출액의 12.8%(1백75억달러)를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D램
가격은 7월말을 바닥으로 평균 30%정도나 상승했고 내년에는 오름세가 가속화
될 것이며 2000년말께는 대규모 공급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마이크론사(D램생산 세계2위)가 싱가포로 공장에
3억달러를 투자, 생산량을 40%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반도체산업의 환경이 급격히 호전되는 상황에서 우리 업계만 빅딜
논의에 묶여 내년 사업계획조차 짜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
까운 일이다.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미국 일본회사들과 당당히 겨루면서 톱
레벨의 기술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그나마 반도체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강제합병할 경우 도대체 누구를 위하는 결과가 될 것인가.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지만 두 회사의 설계-공정기술-생산라
인 등이 판이하게 달라 통합할 경우 오히려 수천억원의 추가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반도체 업계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35%나 돼 주목을 받고 있는 판에 현대와 LG가 합치면 미국의
반독점법 등에 걸려 미국수출에 제동이 걸릴 위험도 높다.

정부는 두 회사에 왜 합병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윽박지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달라진 여건들을 충분히 고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반도체
빅딜을 꼭 해야만 하는지 다시한번 검토해볼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5일자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