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교수. 경제학 >


예로부터 나라의 일꾼은 백성들의 믿음을 얻는 일에 고심했다.

때로는 신뢰를 얻으려는 책략을 쓰기도 했던 모양이다.

중국 중원땅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 다투던 전국시대 진나라 상앙이 그런
사람이었다.

상앙은 변법이라는 새로운 법을 마련했으나 어찌하면 백성들이 새로운 법을
따르도록 만들까 근심했다.

궁리 끝에 한가지 묘한 계책이 떠올랐다.

성문 앞에 긴 나무기둥 하나를 세우고, 이 기둥을 옮겨놓는 사람에게 후한
상금을 내리겠노라는 방을 붙이게 했다.

무슨 방문인가 궁금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쉬운 일에 상금을 준다니 관청에서 백성을 우롱하는 처사라고들
수군수군 빈정댔다.

이때 건장한 젊은이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내가 나무기둥을 옮길 테니 두고 봅시다. 만약 관청이 약속을 어기면 우리
백성이 또 한번 속은 셈치고, 약속을 지키면 앞으로 관청 말을 믿고 잘 따르
도록 합시다"

말을 마치고 기둥을 옮겼다.

상앙은 즉시 약속한 대로 상금을 후하게 내렸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이 사실은 방방곡곡으로 퍼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상앙은 새 법을 성공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다.

백성이 너무 법을 잘 지켜 뒤탈이 났다.

요즘 한국인들은 심신이 몹시 피로하다.

IMF 지원금융사태 탓만이 아니다.

그간 얼마나 요란한 이름의 국민운동이 많았던가.

변질되기 이전 초기의 새마을 운동은 그런대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그 이후 "문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운동들은
오늘날 기억 속에 공허하게 남아있다.

이래서 사람들의 국민운동 불감증은 뿌리 깊다.

이제 "국민의" 정부는 "제2의 건국"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만일 현 정부가 새로운 국민운동에 진지하다면 무엇보다도 국민 사이에
만연된 관청불신과 운동 불감증을 해소하는 일부터 착수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사람의 심리적 자기방어 메커니즘이 흔히 냉소주의로 표출된다.

빈정거림의 전염성은 때론 공동체를 압도할 만큼 강렬하다.

어떤 국민운동이든 이 앞에서는 무력하다.

현 정부의 새로운 운동이 성공하려면 냉소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첫째로 "제2의" 건국의 뜻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단군 건국, 상하이 임정 수립, 48년 정부 수립 등 어느 역사적 사건을
첫번째 나라세움으로 인식하는가의 문제는 시비꾼의 부질없는 말장난이
아니다.

이는 정부의 정통성과 역사인식이 걸려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단순히 다시 나라세우는 정신으로 국력을 모으자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쓰인
것일 수도 있다.

용어의 역사성과 논리성이 분명해야 한다.

둘째로 누가 개혁의 일꾼인지 불분명하다.

현 정부도 언제나의 정부처럼 각 분야의 개혁 추진에 적극적이다.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처한 나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개혁파와 반개혁파의 분류가 애매모호해 보인다.

개혁하려는 의지 능력 실적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패거리와 줄서기로
분류한다.

자질불문하고 우리 쪽 사람은 개혁파로 감싸고 타인은 반개혁파로 내친다.

따라서 사정대상은 당연 남의 쪽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정부하에서 선별적인 소외의식을 느끼는 국민이 적어야 개혁의
국민운동이 유효하다.

셋째로 개혁의 긍정적 의미가 불분명하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무엇을 반대하는지를 보고서야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건설적 개혁 의미가 부각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은 인도주의의 얼굴을 가지고 평범한 국민에게 숨쉴 공간을
주어야 한다.

옭아 조이며 개혁하다가 스스로 덫에 걸린 상앙의 비극적 종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새로운 나라 만들기 운동, 그 취지는 백 번 좋고 옳다.

그러나 그 많던 국민운동 가운데 지속적인 게 있던가.

모두 당초 취지는 좋아 꽃피다가 집권세력이 번번이 자기홍보, 정권 재창출
의 수단으로 이용해 시들었다.

이번 국민운동은 국난 해소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본철학, 지략과 포용력이 미흡한 게 아쉽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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