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브랜드를 사고 파는 시대.

소비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선 브랜드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브랜드는 상품 이미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브랜드전략은 마케팅의 성패를 좌우한다.

최고경영자(CEO)는 가격대별 브랜드의 포지션을 명확히 정해 구매
계층별로 공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제품 및 소비시장의 특성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스위스의 시계업체인 스와치그룹(SMH)이 잃었던 명성을 되찾을수 있었던
것도 니콜라스 하이에크(Nicolas G Hayek)회장이 성공적인 브랜드 전략을
폈기 때문이다.

스위스 시계산업의 입지는 70년대 중반까지 난공불락이었다.

세계 시계시장의 3분1정도를 차지했다.

시계는 역시 스위스제품이 제일이라는 인식은 그때 형성됐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일본과 홍콩업체들이 값싼 노동력과 대량생산
방식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해왔다.

저가제품에서 가격경쟁력을 잃은 스위스 시계 업체들은 저가 시장에서
발을 빼 중가형 제품에 주력했으나 결국 이마저도 일본 홍콩 대만 제품에
밀렸다.

심지어 그들이 자랑하는 주문생산형 초고가 제품군까지 위협을 당하게
됐다.

세계 시장의 규모는 급속히 늘었지만 스위스의 시계 수출은 10년도 채
못돼 반으로 줄었다.

생산량이 74년 9천1백만개에서 83년에는 4천3백만개로 급감했다.

81년 스와치 그룹의 전신인 ASUAG와 SSIH의 주채권단인 스위스은행
등은 하이에크 엔지니어링에 자문을 의뢰했다.

28년 베이루트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레바논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에크는 프랑스 리옹대학에서 수학 물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스위스의 쮜리히 대학에서 보험 통계학을 공부하고 63년 헤이에크
엔지니어링이라는 컨설팅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유에스스틸 다우케미컬 네슬레 BMW 다임러 벤츠 등 세계 우수
회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자문의뢰를 받은 하이에크는 전세계 시장조사와 소비자 심리학
연구조사결과를 담은 "하이에크 리포트"를 냈다.

이 리포트에서는 사람들이 스위스산 시계를 일본이나 홍콩 제품보다
아직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특히 시계산업을 저 중 고가의 제품군으로 구분하고 이를 시계 산업의
3단 케익구조로 도식화해 전체 시계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저가제품의
공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유럽의 비싼 인건비와 스위스 시계의 고급이미지를 훼손시킨다는
반대여론에 부딪쳤다.

그가 스위스 시계산업의 체질개선을 외치게 된것도 이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제조 조립 공정 프로세스를 과감히 자동화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고 외쳤다.

83년 이같은 체질 개선을 통해 스와치를 대중 앞에 선보였지만 매출이
시원치 않았다.

채권단들은 회사를 회생시키는게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고 일본에 회사를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하이에크는 몇몇 투자자들과 힘을 모아 이 회사의
주식 51%를 매수해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후 하이에크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마케팅 생산 전략은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시장을 탈환하기 시작했다.

92년에는 전년 대비 64%라는 이익 신장률을 기록했고 88년부터 93년까지
매년 평균이익성장률이 32%에 달했다.

94년 드디어 유럽 시계 제조업체의 1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그가 수렁에 빠진 회사를 건져낸데는 몇가지 비결이 있었다.

먼저 저가제품으로 잃었던 고객을 되찾았다.

서로 다른 메시지를 담은 14개의 차별화된 브랜드가 서로 다른 구매층을
공략해 나갔다.

스와치의 경우 저가이면서 품질이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과 함께 일상에서
즐거움을 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방송광고 활동을 벌였다.

오메가의 경우 소량 생산되는 고가브랜드인데도 80년대초 2천여개의
모델이 있었다.

제품의 성격이 모호해져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하이에크는 단계적으로 1천여개, 최종적으로 1백30여개의 모델로 줄였다.

스포츠 예술 경영 등 전문직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들을 위한 시계로
자리매김하고 이에 맞는 인물들을 모델로 활용해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다음으로 수직적 통합을 위해 사업영역을 확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부품조달을 위한 조치였다.

일본 및 홍콩 부품업체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수직적 통합과정에서 생산시설의 자동화와 부품의 표준화를 추진했다.

인건비는 전체 원가의 10% 아래로 끌어내렸다.

하이에크는 수직적 통합뿐 아니라 핵심기술을 이용한 사업확대도 꾀했다.

80년대 후반 통신사업으로 다각화를 시도했고 90년대 들어서는 자동차
산업으로 진출했다.

얼핏 보면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 뛰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시계 부품생산의
핵심기술인 초정밀 몰딩(Moulding)기술 반도체 기술 초소형 전자기술 등은
전화기나 호출기의 소형화에 큰 도움이 됐다.

베터리 제조기술은 무연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데 응용됐다.

하이에크 회장은 스와치 그룹의 핵심역량을 파악하고 이를 다른 사업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또 창의성과 상상력을 존중하는 조직구조와 조직문화를 조성했다.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직에서는 하부조직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상부의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러나 스와치 그룹의 경우 세계의 모든 종업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하이에크회장은 66세이면서 6세 아이의 열정과 호기심 끊임없는 창조능력을
가졌다.

그런 능력을 발휘해 침체에 빠진 시계산업을 건져낼 수 있었다.

< 천병혁 AT커니 컨설턴트 seoul-opinion@atkearney.com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