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만남은 3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62년 10월 1일.

서울 낙원동 재무부공무원 연수원에 3백명의 젊은이들이 빼곡히 모여들었다.

공무원임용시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제1회 5급공무원 공개경쟁시험"에
합격해 수습교육을 받으러 전국에서 올라온 사회초년생들이었다.

여느해보다 찬 바람이 일찍 불던 그 해, 서먹서먹한 표정들이 추위를
더했다.

하지만 3개월 교육과정을 낙오자없이 무사히 마친 수습2기생들은 어느새
우정으로 하나가 돼 있었다.

우리는 인생수업의 첫 걸음을 함께 시작했다.

또 한편으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삶의 한 가운데"를 바쳐 "나라의 재정역군"으로 일했다고 자부한다.

경제개발에 가장 중요한 재정확보를 위해 밤낮없이 뛰던 젊은 날의 정열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수습2기생이란 뜻에서 이름붙인 "수이회"는 지난 78년에 만들었다.

당시 세무대학 교수로 있던 성재영(현 세무사)씨가 초대회장을 맡아 회원들
뒷바라지에 열과 성을 다했다.

20여년을 한결같이 총무로 헌신한 송기숙씨도 빼놓을 수 없는 우리 모임의
보배였다.

3백명의 동기중 유명을 달리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임에 빠지는
일 없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모두 2백여명-.

1년에 두차례씩 꼬박꼬박 모임을 연다.

현 16대 회장은 공직에서 은퇴한 뒤 광림교회의 장로로 활동하는 고상영씨가
맡고 있다.

현직에 남아 있는 회원으로는 황재성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들 수 있다.

필자는 9대 회장을 맡아 미력이나마 모임의 발전을 위해 진력했었다.

우리는 등산 골프 여행을 통해 서로 안부를 묻고 추억을 되살린다.

36년 동안 만나다 보니 이제는 먼발치에서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알
정도가 됐다.

회원 개개인의 가정사는 물론 그의 취향까지 훤히 안다.

정기 모임때 만나면 이제 모두가 머리가 희끗한 초로의 모습이다.

그러나 반갑다며 격의없는 막말을 쓰면서 요란스런 모습이 아직도 젊은
시절 그대로다.

골덴 재건복 차림으로 도시락을 싸들고 출장길을 달리던 그 시절, 그 노력을
재현해야 한다며 한 마디씩 나누는 모습에서 "역전의 용사"를 보는 듯 하다.

박정호 < 세무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