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대 그룹에 대해 업종이 다른 계열회사간 상호채무보증을 올해안
으로 모두 없애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다. 그 내용이
예상밖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를 제도화해 나가는 형식 또한 상궤를
벗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30대그룹 계열회사간 채무보증은 지난 2월24일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오는 2000년3월말까지 해소하면 되는 사안이다. 법을 개정하면서 2년여의
유예기간을 둔 것은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그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
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성질의 채무보증을 어느날 갑자기 두달내로 없애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것도
따져봐야할 일이지만, 이런 식의 행정이 과연 법치주의의 원칙에 걸맞은
것인지 의문이다.

채무보증은 은행과 기업간 문제이므로 연말까지 이를 없애는데 꼭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라면 한마디로 비논리적인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채무보증해소문제를 법률로 규정한 입법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
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번 채무보증해소문제는 그 흔한 공청회 등의
절차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의도와 동기가 무엇인지 정말 이해가 가지않는다.

5대 그룹의 계열회사간 채무보증은 11조원대에 달하고 이중 80%가 업종이
다른 계열회사간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대출금을 갚거나
아니면 보증을 대신할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정부관계자들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가지 뿐이다. 하나는 채무보증의 "위험가치"를 평가,
이에 상응하는 금액을 내게하는 대신 보증을 없애주는 것이고, 또다른 방법은
은행이 무조건 보증을 없애주는 대신 대출을 무담보로 분류해 금리를 높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 어느 방법이건 당사자인 5대 그룹에는 상당한 부담을
주는 압박요인이 될게 분명하지만, 은행에 실질적으로 어떤 보탬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지금 왜 이 문제를 들고나오는지를 우리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김태동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5대 그룹 회사채 발행제한"발언에 이어 채무보증
해소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갖는다. 경제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가운데 대기업그룹을 힘들게 만들 문제, 지금 당장
해결해야할 절실한 필요도 없는 사안들을 들고나오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다.

빅딜을 압박하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추측에는 공감이 가지않는다. 발전
설비 철도차량 등에 대한 5대 그룹 자율의 빅딜이 괄목할만한 진전을 나타
내고 있는 국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
것인지, 현 경제팀의 대기업정책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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