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이 너무도 청아한 휴일 오후, 잡다한 일로 머리가 아파 차없는
거리 인사동으로 갔다.

안국동 쪽 입구에 "도심속 전통예술의 축제" "인사동을 세계의 문화명소로"
의 캐치프레이즈가 나무 문 기둥에 새겨져있는 인사동 거리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갤러리에 섞여 우리나라 전통 음식점과 전통 찻집, 고가구점과 도예점을
비롯하여 표구점이며 다기점, 필방과 목각 기념품 가게들이 오밀조밀 줄지어
들어서 있다.

춘천에서 난다는 옥제품과 자수정 등 갖가지 액세서리 가게마다 일본
관광객과 서양인들의 발걸음이 멈춰 서 있었다.

외국인들이 인형가게를 들여다 본다.

각양각색의 한복을 입은 인형들은 앙증스럽고 아름답다.

가지가지 부채가 장식돼 있는 쇼윈도는 우리나라 전통 민예품의 특색과
품격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큼직한 떡메로 인절미를 치는 떡판 앞이었다.

삼삼오오 아이들을 데리고 휴일 나들이를 나온 고단한 가장들이 고개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우리도 한 번 쳐봅시다"

신기해 하는 외국인들이 떡메 치는 걸 구경하던 젊은 가장들은 제각기
한번씩 떡메를 힘껏 어깨너머로 올려 쳐본다.

다들 속이 후련한 얼굴들이었다.

실직의 충격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고의 터널도 다 잊은 듯한
얼굴들이었다.

너나없이 인파에 섞여 콩가루 냄새가 고소한 즉석 인절미를 먹어보는 재미가
마냥 행복한 휴일 오후였다.

상큼한 가을 바람 속에 구겨진 머플러를 날리며 구식 선글래스를 쓴 남자가
아코디온을 켠다.

조금 더 가면 중국옷 같은 누런 개량 한복 차림의 아저씨가 구부리고
앉아서 통수를 불고 있다.

그 앞엔 동전이 든 작은 바구니가 슬픔처럼 놓여 있었다.

인사동 거리를 거슬러 산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들어갔다.

"비우는 행복"이란 타이틀이 붙은 흑백그림들이었다.

비우는 행복...어느새 내 머리는 개운해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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