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전격적으로 철도차량 및 발전설비의 일원화에 합의한 것은 "자율
빅딜"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당초 이 두 분야는 일원화를 추진
해오다 관련기업간의 이해상충으로 지난 7일 이원화체제로 후퇴해 자율빅딜
이 대기업의 이권다툼으로 변질된게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 터여서
더욱 그렇다.

이로써 재계는 1차 사업구조조정 대상인 7개 업종 중 반도체를 제외한 6개
업종의 구조조정안을 마련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올해초 정치권에서 빅딜(대
규모 사업교환)이 거론되기 시작한지 10개월, 관련기업간 협상이 시작된지
불과 70여일만에 이처럼 중요한 합의가 도출됐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정부주도의 인위적인 빅딜은 있을 수 없다며 마지막까
지 자율적인 조정을 고집해온 전경련을 중심으로한 재계의 끈질긴 협상력이
돋보인다. 정부개입없는 자율빅딜이 어디 말처럼 그렇게 잘 되겠느냐는 회의
적 시각이 지배적이었음에 비추어 우리 재계도 "믿고 맡기면 훌륭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철도차량 및 발전설비 일원화 협상을 통해 입증한 것이
큰 성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때마침 기아 및 아시아자동차가 현대로 낙찰됨에 따라 재계의 1차 구조조
정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반도체분야의 책임경영주체 선정문제
가 남아 있지만 최근의 분위기만 이어진다면 예정대로 11월말까지는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5대그룹의 업종별 구조조정의 밑그림이 거의 완성된 만큼 이제는 어떻게
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느냐가 과제로 등장했다. 이제부터는 재계의 노력
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우선
급한 것이 재계가 요구하고 있는 구조조정촉진특별법의 제정이다. 이젠 정부
도 특별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지만 막상 특별법의
내용에 있어서는 재계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알맹이 없는 특별법이 될 소지가 있다.

특별법은 자칫 특혜시비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데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나 세계은행(IBRD)이 대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반대하고
있어 매우 기술적인 어프로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든 기업의 노력에 상응하는 지원이 따르지 않고서는 구조조정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재계가 여론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번의 성과에 만족
하지 말고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계속해서 강도높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정부는 단기적 성과에만 급급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고 진통이 따르더라도
시장경제원칙과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곧 시작될
2차구조조정도 성공할 수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