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났던 A가 잠시 귀국했다.

그가 해직교사가 돼 머나 먼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민길에 오를 때,
의류업을 하던 S는 뒤늦게 신학대학을 나와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냉면집에서 감회 깊은 해후를 했다.

5백50만 해외동포의 일원이 되어 19년째 타국살이를 하는 A는 많이 늙어
보였다.

그의 말대로 이마의 주름살은 무슨 운명인지 S가 하던 옷장사를 자기가
이어받아, 세 아이를 다 대학공부 시켜 어엿한 성인으로 길러낸 성취감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장애인교회 목사가 된 S는 부모도 싫다고 버린 장애아들을 부부가 손수
씻기고 먹이며 기르고 있다.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힘든 때, 그의 고충은 사랑과 희생이라는 귀한
정신만으로 버텨내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

중년에 헤어져 노년기에 재회한 세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자기를 내몬 고국의 발전상에 감격하는 A의 주름진 얼굴에 끝내 물기가
어린다.

외롭고 힘든 타국살이의 서러움이 밴 그의 손엔 소주잔이 들려있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연인을 한곬으로 그리워하듯 조국을
향해 애틋한 사랑을 품어온 이민자의 고독한 모습이었다.

12명의 장애자들과 올 겨울을 나야 하는 S의 눈길은 자주 먼 하늘가를
맴돌곤 했다.

이래 저래 이야기는 세상사에서 인생사로 이어졌다.

이래도 저래도 인생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멋없는 기차이거늘
부와 권력다툼이 다 무엇인가.

명예욕에 따르는 시기와 미움은 또 얼마나 무가치한 감정소비인가.

S의 결론은 이 허망한 세상, 불쌍한 사람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일에
끝까지 헌신하기로 작정했다는 것이다.

A가 말했다.

눈만 뜨면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이 험한 세상에 자네의 용기가 부럽군!

그러자 S가 말했다.

아니지, A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소유자라 할 수 있지.

조국에서 밀려나 지구의 반대편인 멀고 먼 남미에서 꼬레아의 긍지를 잃지
않고 스스로 일어선 애국자가 아닌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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