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사람들은 하트라는 그림에서 "사랑"을 떠올린다.

"당신을 무지하게 사랑합니다"를 필두로 줄줄 써내려간 장문의 글보다
어쩌면 새빨간 하트 한개가 훨씬 뜨거운 열정을 담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림을 통한 의사소통.

이것이 바로 일러스트레이터 조선경씨(39)가 말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정의다.

조선경씨는 요사이 가장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중 한사람.

워낙 일이 많다보니 몸이 하나인게 아쉬울 정도다.

88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를 졸업,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을 전공했다.

대학원을 졸업한후 한동안 "준백수" 상태를 면치 못하던 그는 그해 여름
일러스트레이터로의 삶에 일대 전기를 맞게 됐다.

한 일간지가 미국의 초일류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초청해 일러스트 워크숍을
열었다.

그 중엔 미국 일러스트계의 양대 산맥중 하나인 마샬 아리스만이 끼어
있었다.

워크숍 공모전에서 조씨는 태극기와 성조기의 이미지를 어우러낸 작품으로
70명 참가자중 1등으로 뽑혔다.

그의 작품을 눈여겨 봤던 아리스만은 한국이란 작은 나라의 "재목"을
마음에 담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 명문 예술학교인 SVA(School of Visual Art)의 학장이었던 아리스만은
이후 조씨에게 유학을 권유해 왔다.

1년동안 수업료를 면제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90년말 유학을 떠났고 1년이 지나서부터는 그림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했다.

학교측의 주선으로 AT&T등 굴지 회사의 연례보고서 캘린더등의 작업을
맡았다.

신인 일러스트레이터의 등용문격인 "아트 디렉터 클럽(Art Director"s
Club)"이 주최한 공모전 입상도 큰 힘이 됐다.

타임 비즈니스위크 등 유력 잡지들의 아트디렉터들이 일을 맡겨왔다.

미국인들은 "세금면제 계좌(Tax Free Account)"를 내주는 편법까지 동원해
가며 "불법취업자"인 그에게 일을 맡겼다.

수표 대신 현금으로 고료를 지불하고 기타 비용으로 처리해준 것이다.

그렇게 미국생활을 마치고 94년 귀국한 후엔 신세계 백화점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 앞다투어 창간된 시사주간지들의 표지 일러스트를 도맡다시피했다.

캘린더 책자 행사포스터 동화책 등 일러스트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95년 펴낸 동화책 "마고할미"는 그해의 가장 좋은 그림책으로 선정돼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96년 서울 에어쇼 포스터도 조씨의 작품.

그는 직업관을 말할때 늘 "김치먹는 호랑이"를 강조한다.

"한국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호랑이는 한국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놈이어야 합니다. 쌀밥에 김치를 먹고 자란 호랑이를 표현해 내야 한다는
뜻이지요"

국적불명의 일러스트가 판치는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좋은 일러스트란 세계적인 보편성과 한국적인 특수성이 나름의 독특성을
지닌채 공존하는 것이리라 봅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말이예요"

그는 현재 전래동화의 주인공을 내세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흥부나 놀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들에 재미로도 빠질것 없는 전래동화 주인공들이
얼굴이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아쉬워서다.

반대로 우리의 민화속에 등장하는 개 호랑이 까치 인물 등은 개성이
뚜렷하고 친근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이름이 없다.

"이 둘을 결합하면 세계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고요"

문제는 주변의 인식이 일천한데다 시절까지 어렵다보니 맘 먹은대로 일이
진행되질 않는 것.

바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를 정도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외래 문화에 이땅을 다 내주지 않으려면
말이예요"

< 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