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안팎의 연봉.

8천여 직원에 대한 인사권.

수 천개 거래기업의 생사를 좌우할수 있는 권한.

50조원안팎의 돈을 움직이는 사람.

국회의원도 장.차관도 부럽지 않을만한 위상.

은행장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다.

최고급 승용차에 수행 비서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따라다니고 거래 기업은
언제 어디서나 쩔쩔 맬 수 밖에 없는, 그런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은행장이다.

겉모양 뿐만 아니다.

인사권과 사실상 여신권한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는 막강한 자리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은행장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그래서 나온
것.

은행장자리는 이렇듯 막강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그랬다.

주인이 없는 특성상 은행은 사실상 "은행장 1인천하"였다.

돈줄을 움켜쥔채 얼마든지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할수 있었다.

국회의원도, 장.차관도, 서슬퍼런 판.검사도, 재벌도, 돈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은행장에게 굽신거릴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이제 "흘러간 옛노래"가 됐다.

문민정부들어 툭하면 구속이고, 툭하면 중도하차라는 말이 난무하더니만
국민정부들어선 아예 손발이 잘려버렸다.

그보다는 오히려 은행을 망친, 그래서 나라경제를 망가뜨린 장본인으로
지목되면서 그 위상은 상당히 초라해졌다.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는 "은행장은 임기가 없다"는 수모를 당할 정도다.

국회로부터, 금감위로부터, 재정경제부로부터, 고객들로부터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불과 9개월만이다.

우선 여신권한이 완전 박탈됐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금감위는 "여신심사위원회"를 만들어 거액여신을 심사토록 했다.

은행장은 여신위원회 멤버가 절대 될 수 없다.

금감위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외국인을 영입, 여신을 맡기라고 성화다.

돈장사인 은행에서 여신권한을 박탈당했으니 어디가서 힘주기도 머쓱하다.

물론 아직은 여신결정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여신위원회제도가 정착될수록 은행장이 나서서 "돈을 주라, 마라"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게 뻔하다.

은행장의 쌍칼인 인사권도 제대로 휘둘러 볼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금감위에서는 임원수는 물론 은행원들도 줄이라고 재촉한다.

자리에 여유가 있어야 사람을 봐주고, 벌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있는 사람마저 줄이라니 자기사람을 드러내놓고 봐주기는 언감생심
꿈도 꿀수 없다.

오히려 특정임원에게 "제발 이번에 나가달라"고 통사정할수 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더욱이 인원감축과정에서 정실이 발견될 경우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은행
분위기를 감안하면 "특정인 구제하기"도 힘들어지게 됐다.

그렇지만 이런 은행장의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은행장은 은행의 경영을 총체적으로 책임지고 비전을 제시하며 조직을
충실히 관리하는게 원래 책무라는 것이다.

그렇지않고 과거처럼 여신권과 인사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경우
은행산업은 영원히 낙후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새로운 금융전쟁이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은행장이 은행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큰게 사실이다.

은행장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은행의 존망이 결정되는게 금융전쟁
시대다.

따라서 은행장의 자질과 역량은 과거 어느때보다 중요한 명제가 됐다.

"줄대기"나 "눈치보기"능력이 아닌 진실로 은행을 선도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은행장을 둔 은행의 전망은 그래서 밝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