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영 < 외교통상부 장관 >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이야기할 때 흔히들 "가깝고도 먼 나라"로
비유한다.

여기서 가깝다는 것은 지리적인 개념일 것이고 멀다는 것은 양국 국민들간의
정서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로 느끼고 있으며
오늘에 있어서도 이러한 표현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또한 앞으로 바람직한 양국 관계는 어떠한 것일까.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일 뿐 아니라 사서에 기록된 훨씬
이전부터 오랫동안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서로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84년9월 히로히토 일본 천황은 전두환 대통령 환영 만찬사에서 "한국과
일본은 일의대수의 이웃 나라이며 일본은 한국과의 교류에 의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언급하면서 고대 일본 문화에 한국이 많은 영향을 준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20세기의 양국 관계만을 보면 실로 갈등과 협력이 혼재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금세기초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와 45년 일본의 패망에 따른 한국의
해방, 그리고 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급속한 교류와 협력의 흐름이 이어진
지난 20세기의 한.일관계는 "격동의 연속"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예견해 보기에 앞서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얼핏 보면 양국간은 어려운 문제만 많은, 즉 달리 말하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 한.일관계는 그 어느 나라와의 관계보다도
긴밀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냉전 후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두 나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며 상호 긴밀히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양국은 그것이 제도화되었건 아니건 간에 서로가 일일생활권의
경제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 양국의 무역규모는 총 4백26억달러로 우리나라 총 무역고의
15%에 이르고 있다.

셋째로 양국은 같이 한자를 사용하는 문화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오랜 세월동안 서로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또 경쟁하는
관계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한 이웃으로서 영원히 더불어 살아야
하는 숙명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민들이 일본을 "먼 나라"로 인식해오고 있는 데는 금세기초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로 빚어진 불행한 과거사에 따른 정서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한.일간의 소위 과거사 문제는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상호 밀접한 교류와 협력에도 불구하고 양국관계가 국민의 상호 이해와
신뢰에 입각한 진정한 우호협력 관계로 발전하는데 있어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지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양국관계 발전에 더이상 장애 요소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한다면 우리 국민들도
넓은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검증되는 것으로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언하기도 한다.

역사는 결코 감추거나 미화될 수 없는 사실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일본" "일본인"하면 무조건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일본을 진정한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식으로 바꾸어 나감으로써
일본내에서 압한 혐한 감정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 국민 스스로의 노력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한.일간에는 과거사 문제 이외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나라간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어업문제는 한.일 양국간 최대 현안으로 지난 2년여동안
양국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지난 9월 25일 양국이 양보와 타협의
정신으로 어업 교섭을 원만히 타결시킨 것은 한.일관계 발전의 바람직한
신호로 평가하고자 한다.

지난해말 우리가 금융위기 사태에 직면했을 때 일본은 자국의 어려운
상황하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바 있으며 아시아 지역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한.일 양국간엔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또한 한.일 양국은 오는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범국민적 차원의 적극적인 협력이 요구된다.

특히 한.일간에는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공통 이익과 선을 추구하기 위해
협력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대북한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및 안정 유지를 위한 공조와 범세계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긴밀한 협조 등 그 예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앞으로 한.일 양국은 상호 신뢰와 존중 속에서 역사인식의 차이를
좁혀나가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구상해 나가기 위한 양국 국민간의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21세기 한.일 관계는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양국
국민들의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진정한 "국민적 협력의 신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