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 서울대 교수. 경제학 >

현재 진행중에 있는 금융부문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은 전반적인 산업구조
조정으로 이어질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다.

작년 하반기 이후 당면해 온 경제위기가 한국경제의 잠재력을 크게 잠식할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21세기에 대비한 산업구조의
재편을 이룩하는 마지막 계기로 바꿀 수 있는 슬기가 요청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산업구조조정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경제의 현실을 고려할 때 그 내용은 1,2차 및 3차 산업부문간의 연계,
경제의 서비스화, 각 산업부문의 생산성 제고, 그리고 특화(전문화)산업의
육성으로 종합된다고 생각한다.

이들 내용은 한마디로 한국경제의 취약한 측면이며 따라서 산업구조재편의
밑바탕인 기업구조조정이 지향해야할 방향이기도 하다.

특히 기업의 "전문화"는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며
동시에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국내 부존자원이 제한돼 있고 시장규모가 협소할뿐만 아니라
WTO체제가 말해주듯이 국내외 시장경제가 점차 사라짐으로써 하나의 세계
시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경우 세계적인 경쟁우위를
누리지 못하는 기업은 국내시장마저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반영해 최근 국제적인 대기업들은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크게는 두가지 방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나는 기업 보유자원을 핵심업종으로 집중시키는 전문화 작업과 함께
사업정리, 기술개발 및 조직개편과 같은 생산 경영개혁을 시도하는 내부적
혁신이다.

96~97년만 하더라도 GM, AT&T, 듀폰, 닛산 등 많은 기업에서 전례없는
변혁이 일어났다.

또다른 하나는 국내외적 M&A(인수합병)가 구조조정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잉-맥도널 더글러스간(항공), 다임러 벤츠-크라이슬러
간(자동차) 및 BP-Amoco간(석유화학) 등의 합병이 모두 97~98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국내에서 진행된 예를 보더라도 미국의 경우 이제껏 10대 M&A중에서 9건이
96년 이후에 실현됐다.

M&A의 취지는 대형화 전문화 및 효율성 제고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자는데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대기업들은 아직도 민감하게 바뀌고 있는 냉혹한
국제경제의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중요 선도산업은 선진제국의 기술우위와 개도국의 저요소
비용 사이의 틈바구니에 끼여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술개발의 어려움으로 인해 선진제국과 경쟁하기 보다는 국내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함으로써 경제적 렌트(지대)를 얻자는 것이 많은 대기업의
경영전략이다.

따지고 보면 무리한 기업확장이나 중복투자와 같은 오늘날 경제위기의
중요한 요인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수출이 40년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또 선진제국내에서 시장점유율이
꾸준히 감소하는 현상은 무엇보다도 경쟁력을 잃고 있음을 반영한다.

한국의 대기업 집단은 그 규모나 국민경제적 비중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
으로 세계 유수 기업집단과도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수익성을 비롯한 경쟁력에 있어서는 크게 뒤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수출주도산업인 자동차 반도체 통신기기 및 일부 전자제품
등의 자본생산성을 비교하면 미국의 50%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경쟁력 약화가 특히 핵심업종을 중심으로 한 전문화 노력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 평균 투자대상 업종수를 보면 30대기업의 경우 20개 업종, 그리고 5대
기업의 경우 30개 업종에 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통끝에 5대 대기업 그룹들이 7개 업종에 대해 속칭 "빅딜"을
이룬 것을 환영한다.

이제 시작이기를 바라며 정부의 "권유"없이도 "전문화만이 기업이 살길"
이라는 의식 전환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정부 역시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일관성과 설득력을 갖춘 비전을 제시하고
업종전문화가 시장원리에 따라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법.제도적 측면에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