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 서울시립대 총장 >

"1998년의 말씀" 하나만 들라면 나는 두봉 신부님의 경구를 들겠다.

"IMF극복은 5년이상 걸릴 것 같은데 미안한 얘기지만 차라리 빨리 안풀리는
게 병폐를 치유하는데 좋을지도 몰라요.

도덕성을 새삼 확립하는 "양심회복운동"없이 근본적 치유는 불가능합니다.

정부 기업 개인 모두가 지금 돈 문제에만 매달리는데 돈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양면성이 있어요"

교구장직 정년을 14년이나 남기고도 자진 은퇴해 행주산성 밑에서 농사일
하며 지내는 이 노 신부님의 입에서 우리들의 과소비와 정치지도자는 물론
교회 가정에까지 스며있는 독재 풍토를 개탄한다.

개혁의 총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정치 정부 공기업 금융 노동 교육이 개혁돼야 한다는데도 아무 이의가 없다.

그중 경제는 기업 노동이 개혁을 같이 시작해야 하나 금융부터 먼저 정리
돼야 한다는데도 전폭적 합의가 있다.

금융개혁의 핵심이 부실은행 퇴출, 건실.주도은행 촉진이며 이는 곧 금융
기관의 부실채권정리에 달렸다는 것도 모두가 안다.

또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세금을 써야만 정리될
수 있다는 것도 국민들은 안다.

그 다음부터 막힌다.

우선 부실채권 규모가 1백20조원, 1백60조원 또는 그 이상 등 여러 설이
있다.

정부연구기관 책임자의 입에서 부실채권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개혁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있지 않으냐는 불평의 소리를 듣는다.

5개 퇴출은행의 부실도 당초 예상보다 배가 늘어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는 금융구조개혁작업에 50조원 정도의 국채로 대응하려는 모양이지만
은행이나 외국신용기관에서 그야말로 코웃음치고 있다.

더욱 답답한 일은 지금 이 나라 어느 기관도 정확히 금융과 기업의 부실금융
부실채무 규모를 아는 이가 없다는데 있다.

너무 오랫동안 부정 거짓 부패 부실이 정상이었고, 법치 정직 염치 건실이
비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땅의 금융기관과 기업의 장부가 모두 "도덕적 해이"상태이기 때문이다.

새만금간척사업비는 당초 9천억원에서 1조8천억원으로 늘었다가 최근
감사원 감사에 의하면 11조5천억원으로 늘었다.

이 나라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참으로 염치없는 일은 부실규모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빚을 갚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 부실금융 부실채무가 바로 그들의 부패비용이었다.

오늘날 이 위기의 원인중엔 국민들의 과소비와 노동자들의 과격쟁의도 있다.

그러나 원죄는 정경유착의 부패와 "5대 강국"구호를 외치며 허장성세에
앞장선 이 나라 최고지도자들임을 만 천하가 다 안다.

진실과 법치의 심판이 있다면 이 땅의 지도자 치고 감옥에 안갈 자 그 누구
인가.

우리나라의 투자율은 유난히 높다.

아시아 네마리 용 가운데 제일 높다.

그런데 왜 한국만이 IMF구제금융의 거지신세가 됐는가.

그것은 투자율은 높았으나 부실투자였고 건실투자와 부실투자만큼의 차액은
"국책사업"이란 이름 밑에 벌어진 정.재.관계 지도자들의 부패비용이었던
것이다.

다른 세마리 용은 더 적은 돈으로도 부패비용이 없으니 더 효율적 투자를
했다.

우리는 계산상 높은 투자였으나 부패비용을 빼면 오히려 더 적고 더 나쁜
투자만 했다.

게다가 부패일상화로 경제의 사회기반, 즉 신용과 투명성이 산산이 깨져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잃었다.

부패-부실-불신-국가경쟁력 상실은 역사의 법칙이다.

지금 한국의 경제개혁은 결국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반성과 참회라는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전진하지 못한다.

이 여과 정리과정없이는 1백조원을 넘길 것이 확실한(거기에다 올해부터
재정적자까지 새로 시작되는) 국민부담을 은행과 기업을 살리기 위해 쓰자는
설득, 노동자들의 인내를 요구하는 설득, 그리하여 국민합의를 얻는 정치는
어려울 것이다.

이 땅의 지도자들은 노사현장이나 납세자들 앞에 설 반성과 참회의 진실은
없이 IMF(국제통화기금)하고나 대화할 수 있는 기능주의적인 접근에서
맴돌고 있다.

경제개혁은 경제 홀로 서지 않는다.

개혁할 수 있는 정치의 정당성 도덕성 없이 기능적 접근의 꾀로 넘는 회피
행각은 혼란만 가중시킨다.

"도덕성 회복운동" 이것이 지금부터 21세기의 명제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