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해외매각, 기아자동차 입찰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들은 이들 은행과 기아문제의 처리과정은 한국의 금융.기업구조
조정 속도와 깊이를 상징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매각과 국제입찰이라는 해법을 선택했지만 기대한 만큼 시원스런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른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외국인좌담회 시리즈의 다섯번째 주제로 "은행.기업의
구조조정과 해외매각"에 대해 얘기를 들어 봤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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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 참석자 : 리처드 새뮤얼슨 < 워버그딜론리드 서울지점장 >
임석정 < JP모건 서울사무소장 >
전성철 < 사회 / 국제변호사 > ]

<> 전성철 국제변호사(사회) =한국 경제개혁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전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경제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에 상당한 오류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 리처드 새뮤얼슨 워버그딜론리드 서울지점장 =고금리정책 등 서둘러
처방전을 내린게 흠이었지만 전반적으로는 한국경제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의 자본시장개방을 촉진시킨 공도 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정부의 관료들이나 민간연구기관들은 국내 자금
흐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자본시장을 개방할수 없다고 했다.

또 국내외 금리차이가 2%포인트 이하로 떨어지기 전에는 자본시장을 개방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외환위기를 맞아 외화유입이 쉬워지도록 자본시장 빗장을 활짝 열어 젖혔다.

연초 미국 재무부채권(TB)이나 리보금리 등 국제금리에 10%포인트 정도의
가산금리가 얹어졌는데도 외국자본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원화가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IMF가 투명한 회계제도 도입이나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 한국정부가 자체적
으로 할 수 없었던,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회복을 촉진시키는 처방전도
같이 내놓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 줘야 한다고 본다.

<> 임석정 JP모건 서울사무소장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률적으로
고금리 처방책을 쓴 것은 IMF의 실수다.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에게 동일한 룰을 적용할순 없다.

최근 IMF도 고금리정책에 따른 기업의 연쇄부도, 신용경색 등과 같은
심각성을 깨닫고 금리인하에 동의했다.

현재 4백20억달러를 웃도는 가용외환보유고를 감안하면 제2의 외환위기에
대해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연말까지 경상수지흑자를 고려하면 가용외환보유고는 더 늘어날 것이다.

환율변동폭도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연말 달러당 원화환율은 1천4백원, 내년에는 1천5백원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게 JP모건의 공식적인 전망이다.

<> 사회 =정부가 은행을 통해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은행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또 다른 관치금융을 초래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다.

은행을 통한 기업구조조정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 임 소장 =구조조정 과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금융위기를 겪었던 스웨덴도 정부가 개입해 성공한 경험이 있다.

미국도 저축대부조합(S&L) 정리때 개입했었다.

정부의 개입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자동차 배터리가 다 닳았을 때는 누군가가 나서 급충전을 해 시동을 걸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새뮤얼슨 지점장 =우선 구조조정에 정치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개입되는
것 같다.

은행구조조정의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정치적인 부담을 느껴 경쟁력없는 부실은행을 폐쇄하기 보다 합병
이나 계약이전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이 복잡하게 됐다.

여건상 국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아 정부가 합병은행 자금
지원에 나서게 됐다.

고스란이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은행.기업의 노조나 경영진의 눈치를 보는 등 정부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매달리다 보니 구조조정은 늦어지고 개입만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 사회 =그렇다면 합병은행의 경우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 새뮤얼슨 지점장 =지금까지 한국 은행들의 최대주주는 한국정부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구조조정과정에서 서울은행 제일은행과 같이 정부가 증자를 통해
지원하게 되면서 다시 국영은행으로 만들어 버린 꼴이 됐다.

정부가 다시 은행을 거느리게 된 셈이다.

상업 한일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합병후 정부가 지원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른 합병은행도 같은 처지에 놓일 판이다.

합병이후 은행들이 진정한 자율성을 가지게 될지 의문이다.

정부가 최대주주로 있는 한 재경부의 관리들이 은행의 경영진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게 뻔하다.

정부의 경영간섭유혹은 앞으로도 커질 것이다.

지연과 학연 등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은행경영진구성도 문제다.

공정한 대출과 경영이 이뤄지도록 철저한 회계감사가 절실하다.

<> 임 소장 =합병이후 은행이 좀더 많은 독립성및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합병후에도 은행들은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은행권의 총부실채권규모는 GDP의 34%에 달한다.

이중 절반 정도인 17%가 부실화된다고 하고 이를 재정에서 처리해 준다면
어는 정도 감당할수 있는 일이다.

금융기관이 독립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립적인 신용평가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은행들이 기업에 대한 정확한 신용평가를 근거로 할 때만 기업대출이
건전해진다.

현재 3개의 신용평가기관이 있지만 하나는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다른 곳도 소유기관이 따로 있어 정치적인 입김을 타게 돼 있다.

신용평가시스템을 개혁하는게 은행권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을 키울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고 본다.

<> 사회 =해외매각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 임 소장 =해외에 매각하기 위해서도 정부의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

이래저래 정부의 지원없이는 안된다는 말이다.

지난해 태국의 한 은행을 사기 위해 4개의 외국은행이 달려 들었다.

매각대상 은행에 대한 태국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 사회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이 오히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은행 자체가 부실하기 때문에 미국의 RTC와 같은 "부실기업정리공사"를
설립하자는 주장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새뮤얼슨 지점장 =은행이 개입하든 안하든, RTC와 같은 기구를 만들든
만들지 않든 정작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단칼에 끝낼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매우 복잡하고 절차도 간단치 않다.

따라서 일관적인 원칙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기업의 구조조정과정은 그렇지 못하다.

땜질식 구조조정이라는 인상을 준다.

한보그룹은 아직도 영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동아그룹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공사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대규모 협조융자를 해줬다.

제3의 구조조정전담기구를 만들더라도 투명성및 일관성을 갖추어야 하며
정치적인 입김도 배제돼야 한다.

<> 임 소장 =그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은 구조조정의 청사진이나 큰 그림이
부족하다는 문제로 연결된다.

단순히 BIS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키라거나 부채비율을 200%까지 낮추라는
요구보다는 단계적으로 큰 목표를 정해 놓아야 한다는 시각이 외국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한국정부가 은행의 자율성 주주권리신장 수익중시경영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사회 =기아자동차입찰과 서울 제일은행의 해외매각방법이나 절차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특별한 문제는 없는가.

<> 새뮤얼슨 지점장 =자동차산업의 공급과잉이나 중복투자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기아차는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자동차업계의 공장가동률은 50%정도 밖에 안된다.

두 은행 해외매각의 경우 융통성이 너무 모자란다고 본다.

솔직히 말해 외국인들은 가장 부실한 두 은행보다는 다른 은행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다른 은행의 매각도 병행하면서 서울 제일은행 매각전략을
짤 수도 있다.

두 은행만 고집스럽게 팔겠다고만 하니 외국인들의 관심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꼭 팔고는 싶지만 협상카드는 매우 제한적이게 된다.

경직된 전략이다.

결국 구조조정이 더디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외신인도도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

<> 임 소장 =포철 민영화계획도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지분중 27%를 주식으로 매각하겠다는 방침만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내외 시장상황이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정도로 좋지 않다.

기왕에 비싼 가격에 팔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교환사채(EB) 등을 발행하는등 효율적이고 시장상황에 알맞는 방법으로
발상을 전환해 매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사회 =한국정부의 개혁프로그램은 제대로 실천되고 있다고 평가하는가.

<> 임 소장 =무엇보다 솔직하고 투명한 정보공개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난해말 정부는 가용외환보유고를 숨겨왔으나 이젠 공개하고 있다.

은행들의 부실채권규모도 밝히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말 은행권의 부실채권규모가 총여신의 5%라고 했지만
지금은 15%에 달한다고 비교적 투명하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와 깊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편이다.

한국보다 먼저 외환위기를 맞은 태국은 15개 은행의 문을 닫는 등 과감하고
신속한 개혁정책을 폈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적기 때문에 태국과 개혁속도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극과 극을 오가는 급진성보다는 한단계씩 이뤄지는 개혁이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개혁속도와 깊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 새뮤얼슨 지점장 =동감이다.

개혁실천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실망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과거 소비에트식으로 무조건 명령하는 식의 개혁을
하라는게 아니다.

예를 들어 상호지급보증해소 문제의 경우 기업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들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일반투자자와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리를
행사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다시 부실기업과 은행만 양산하는 결과를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 사회 =한국경제의 개혁과 관련, 이것만은 꼭 이뤄져야 한다는 식으로
외국인들이 가장 바라는게 있다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나.

<> 새뮤얼슨 지점장 =수익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개혁이 우선돼야 하고 그에 따라 기업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은행이 고도의 여신심사기준을 마련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게
급선무다.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차별화해 대출하는 등 대출관행이 합리화돼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본이 배분되다 보면 기업들도 중복투자를 멀리하고 과대비용
을 줄이게 된다.

기업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 정리=조정애 기자 jcho@ 김홍열 기자 com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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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난에서 제시된 의견들은 본사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반론이 있으시다면 전자메일(주소 forum@ked.co.kr)로 보내 주십시오.

다음 좌담회에 반드시 반영하겠습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