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규제에서 자율관리체제로"

정부는 산업안전관리를 규제에서 기업의 자율로 전환하고 있다.

정부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고 사업장별 안전보건관리는 기업에 맡기고
있다.

안전분야에 대한 정부조직도 축소했다.

사업장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제도로는 더이상 기업의 적극적인
안전정책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기업 역시 정부의 획일적 규제보다는 현장의 현실에 부합하는 안전정책을
펴나갈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했다.

이런 인식은 어느정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산재율도 꾸준히 낮아지고 있었고 안전에 대한 사업주와 근로자들의 의식도
고양됐다.

특히 기업들이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는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이익으로
돌아와 경쟁력을 강화할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자율관리는 산업현장에
뿌리를 내리는듯 했다.

그러나 기업의 자율관리체제는 최근들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기업의 부도.폐업이 속출하고 실업이 크게 늘어나 노.사의 관심이 경영난
극복과 고용안정에 집중됨에 따라 산업재해예방의 초석이 되는 기업의 안전.
보건활동이 상당히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보건시설을 위한 신규 투자가 거의 중지되고 안전.보건관리조직도
축소되는 등 산업재해예방에 대한 의지와 관심도 낮아졌다.

기업의 인력감축 및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임시.파견 근로자와 직장내
배치전환 근로자가 증가되고 있는데 이들은 사전 안전지식 부족으로 재해의
위험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업의 기본적인 안전.보건관리체제 자체가 흔들림에 따라 대형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제 IMF가 우리나라 안전보건분야의 정책기조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 안전관리소홀 =기업들은 살아 남느냐 마는냐의 기로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비용절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판매촉진과 자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반면 산업안전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비용절감을 위해 줄여야 하는 대상 1순위에 산업안전분야가 올라가 있는
것이다.

각 사업장에서 대폭 감축된 안전관리자 수가 대표적 사례다.

안전관리자는 지난 96년말 2만4천2백51개 사업장에서 2만6천27명에 달했다.

그러나 올 6월말에는 1만4천2백17개 사업장에 1만5천2백84명으로 41%나
줄었다.

근로자들도 산업안전을 강력하게 요구할 처지가 못되기는 마찬가지다.

해고의 위협에 놓이면서 다소 위험해도 본인이 알아서 피하고 아파도
참아야 하는 형편이다.

특히 은행 등 많은 사무직의 경우 퇴출스트레스까지 겹쳐 두통 심장병 등을
앓고 있지만 회사측에는 입밖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대량실직사태이후 개인질병이 급증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올 상반기 재해자수는 휴폐업 사업장 증가, 공장가동률 감소로 인해
지난해에 비해 26.4% 줄어들어 2만4천9백58명에 달했다.

그러나 고혈압 뇌졸중 심장마비 등 개인질병에 의한 사망자는 올 상반기
3백3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증가했다.

정부 역시 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면서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하기는 힘든 현실이다.

오히려 기업규제완화라는 차원에서 안전에 관련된 안전장치들이 없어지고
있다.

노동부내의 안전부서 조직부터 대폭 줄였다.

노동부 지방노동사무소 산업안전과 31개소 가운데 14개소가 폐지되고
15개소가 팀으로 축소 개편됐다.

산업안전감독관의 수는 2백51명에서 2백명으로 20% 감축됐다.

노동부 어느 조직보다 감원폭이 큰 셈이다.

<> 산업안전대책 =산업안전에 대한 시설이나 인원축소로 경비를 절감하려는
것은 "장님이 제 닭 잡아먹는 격"이다.

안전에 대한 투자소홀은 산재증가로 곧바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이는 사전
예방보다 훨씬 많은 경제적 사회적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에 따른 치료비 등 직접적 손실은 무려
1조5천5백60억원에 달하고 생산손실 등 간접비용을 포함한 총비용은 무려
7조7천8백2억원에 이른다.

이에따라 노동부는 IMF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산업안전대책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노동부는 산업안전에 대한 교육은 시설설치비에 비해 경비는 거의
들지 않는 반면 예방효과가 무척 높다는 점을 감안, 기업들의 안전교육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실제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절반정도가 교육부족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방문점검 등 직접 감독체제에서 지원, 컨설팅 등 간접
유도방식으로 규제방식을 전환했다.

노동부는 지난 2년간의 재해율,사망재해발생여부를 평가, 상위 20% 이내에
포함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도감독을 배제하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대신 현행 처벌제도의 실효성이 미흡한 점을 감안, 위반사업장에 대해서는
일벌백계식으로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중이다.

노동부는 또 자율규제정착을 위해 각 사업장마다 안전경영시스템을 도입토록
하고 근로자들이 안전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있는 제도를 구축해 나갈 계획
이다.

< 특별취재반 : 윤기철 차장 upyks@
김광현 기자 kkh@ 김태완 기자 tw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