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레이시아정부 금융시장 개입 ''마하티르 실험'' 의미 ]]

지난 8월 말 동남아 3국의 서구자본에 대한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말레이지아, 홍콩, 대만 등이 통화가치와 주가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 및 외환거래에 대한 자본통제를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이중에서 언론의 관심은 마하티르 총리로 모아졌다.

서구자본에 대한 아시아적 가치의 수호자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편의상 이들 국가의 정책을 "마하티르 실험"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마하티르 실험이 시작되자 서방언론들은 일제히 우려와 비판의 논조로
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자본통제를 지지하는 크루그만 교수같은 이도 어디까지나 이는
한시적이어야 하며, 서구식 경제개혁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에는 궁극적으로
실물경제가 파탄에 직면할 것이라는 충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서구자본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마하티르 실험은 일단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투기자본이 행동의 제약을 받고 이자율 안정과 주가 상승이라는 청신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이러한 국면이 지속되고 나아가 실물경제에 까지 파급효과가
나타나게 될 경우 자본통제 정책은 국제금융시대에 신흥시장이 채택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모델로서 정착될 전망이다.

서구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점에서 마하티르 실험이 추진될 수 있었던
데는 어떠한 배경이 있었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 국가 경제가 공통적으로 화교자본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거래의 통제는 외자가 들어오는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초강경정책을 밀어부친데에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것은 화교자본일 가능성이 높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화교자본은 지연, 혈연 및 업연이라는 3연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국가단위의 경제는 쉽게 극복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서구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다.

이들이 응집력을 발휘할 경우 독자적인 세력권 형성은 충분히 가능하다.

홍콩, 대만 및 말레이시아는 화교경제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500대 화교기업의 전체 매출액중에서 이들 3국에 위치한 화교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75%를 넘고 있다.

이들 3국이 동시에 서구자본에 반기를 들고 나온 사실은 서구자본에
대항해 자체적인 방어벽을 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지난 10일 대만에서 개최되었던 아태경제협력체(APEC) 산하
사업자문위원회(ABAC) 분위기에서 감지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연대감은 오는 11월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APEC 연례 정상회담에서 보다 강화될 조짐이다.

마하티르 실험이 장기적으로도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경제에 연착륙할 경우 단순히 새로운 모델 정착을
넘어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달러화-유로화 구조에 화교블럭이라고 하는
제3의 통화블럭권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 경제권에 서구자본에 지속적으로 시달려 온 엔화가
가세할 경우, 세계경제는 3개의 통화블럭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될 것이다.

지금은 마하티르 실험을 관찰하면서 우리의 정부와 기업의 체크리스트에
"제3의 통화블럭 형성"이라는 가능성을 하나 추가해야 할 시점이다.

강태진 < 와이즈디베이스 이사/경제학 박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