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최대 현안인 어업협정 개정 협상이 2년4개월만에 극적으로
타결된 것은 내용면에서 몇가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국 관계를
짓눌러온 큰 짐 하나를 덜게 됐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현행 협정은 내년 1월 효력이 정지되므로 만약 새 협정이 타결되지 않았
다면 동해의 어업질서가 실종돼 양국간 긴장이 고조될 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등장으로 호전되기 시작한 양국관계가 다시 악화될 수도 있는
형국이었다. 때문에 쌍방이 절충점을 찾음으로써 "목의 가시"를 제거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번 협상은 일본이 기존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배수의 진을 치고
덤벼든 까닭에 우리 정부로서는 수세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달
7일로 예정된 김대통령의 방일에 앞서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지나치게 정치적 타결 쪽에 무게를 둠으로써 실무적 차원에서 몇가지
중요한 양보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우리 정부는 일본의 배타적 어업수역 내에서의 조업 기득권
보장에 주력했으나 결국 일본에 양보한 결과가 돼 아쉬움이 크다. 최대
쟁점이었던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을 놓고 한국측이 고수해온 동경 1백36도
에서 양보, 1백35도30분으로 합의함으로써 황금어장인 대화퇴 어장의 절반을
잃게 된 것은 그동안 이곳에서만 연 2만t이 넘는 수확을 올려온 한국어민들
에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을 위한 협상에서
일본은 이번의 어업협정선을 선례로 우리측이 주장하는 동경 1백36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의 권익은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독도 문제의 경우 이번 협상에서는 이를 거론하지 않아 지금까지 유지돼
온 한국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양국이 독도 부근 12해리를 제외한 주변수역을 중간수역으로 설정하고 이를
공동관리하기로 한 것은 일본이 계속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빌미를 남겨
뒀다는 점에서 개운치 못하다.

양국 근해에서의 어획량 조정문제에서도 3년 후에는 양국의 어획량이
같도록 줄여나가기로 합의함으로써 당장 어민들의 생계지원 대책을 세워야
할 판이다.

이번 어업문제의 타결과정도 그렇지만 앞으로 한.일간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매번 임시미봉의 정치적 타결에 의존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기 쉬운 정치적 접근만으로는 과거사
문제든, 어업문제든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한.일 양국정부가 지향하는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구축도 정치적 접근보다는 양국 국민간의
진정한 이해와 호양의 정신을 바탕으로 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