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 사는 필자의 형제들과 사촌들이 모여 최근 고향을 찾았다.

아버지 형제분들이 주로 해오던 벌초를 올해부터 대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새벽 일찍 집을 출발했던 터라 고향 동네 어귀에 있는 큰 냇가에 도착하니
아직 아침이다.

공기는 더없이 상큼하고 신작로에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정겹다.

지난 여름 폭우로 하천둑이 무너지면서 물이 휩쓸고 지나간 들판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논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어릴적 큰 냇가에서 멱감던 일, 수박 참외 서리하던 일, 꼴망테 메고
논두렁 밭두렁을 헤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초가집 밖에 없던 곳에 번듯하게 지은 양옥집들이 군데군데 들어선 마을을
지나 한참 후에야 선산이 있는 산 모퉁이에 도착했다.

언젠가는 장남인 필자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버지를 따라
산소가는 길에 고목나무에 낫으로 흠집을 내서 표시도 하고 큰 바위의
위치도 확인해 놓았었다.

그러나 길도 없이 나무가 우거진 산등성이를 삼십분은 족히 올라가야 있는
산소를 찾는 일이 올때마다 어렵다.

산소주위에 있는 나무들의 키가 자라 햇빛을 가려서인지 잔디가 거의 없다.

산소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낸다면 햇빛도 잘들고 앞도
훤할테지만 모두들 제 조상 생각만 한다면 남아 있을 나무가 얼마나
되겠는가.

온종일 몇군데 산소의 벌초를 끝내고 나니 어지간히 힘든게 아니다.

그렇지만 오라간만에 흩어져사는 사촌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아마도 이것이 조상들의 뜻이리라. 돌아오는 길 옆에 있는 산 여기저기에는
전에 없던 넓직한 묘지들이 눈에 띈다.

땅덩어리가 좁아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부족한데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
이렇게 많은 공간을 내주고 자연을 훼손해야 하는가 생각해본다.

얼마전 모그룹회장이 세상을 떴을때 그분의 유지에 따라 화장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이제 우리도 매장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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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