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래바람 부는 아득한 사막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황량한 심정들이라고 토로한다.

경제가 6.25전쟁 이후 가장 피패한 상태이고, 민심 또한 흉흉하다.

돈을 빨리 내놓지 않는다고 열살짜리 초등학생의 손가락을 잘라 가지고
달아난 떼강도가 생기는 실정인 것이다.

우리 국민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잔잔한 항구에 닻을 내려야할 배가 산으로 오게 된 연유는 눈먼 선장을
만난 까닭이다.

우리 선조들은 9백번이 넘는 외침을 당했어도, 그때마다 일치단결하여
극복해낸 슬기와 지혜가 있었다.

우리도 나라의 경제가 통째로 넘어간다는 소리에 아껴쓰고 남겨두었던
몇푼 안되는 달러를 내어놓고, 각종 추억이 아로새겨진 금반지 목걸이를
줄서서 바치는 애국심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서민들의 나라 사랑법일 뿐, 소위 상류층이라고 일컫는
부류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돈이면 다 된다는 비뚤어진 자식사랑에 수천만원의 고액 과외사건으로,
당장 몸 눕혀 잘 곳 잃고 헤매는 수재민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의 고달픈
서러움에 배신감의 찬물을 끼얹고도 태연하지 않은가.

아이러니칼하게도 대학 입시철마다 수석합격생은 혼자서 교과서대로 공부한
학생들이라는데 서민들은 통쾌함을 느낀다.

이번 고액과외를 시킨 집의 애들이 재수를 한다는데 쓴웃음을 짓게 되는
것처럼.

주말 오후 TV앞에서 "사랑의 리퀘스트"를 본다.

획기적인 기획과 대중의 온정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도 초단위로 올라가는 빠르고 엄청난 숫자에 경이로움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부담없는 천원씩의 온정이 생명을 위협받는 어린이의 수술비과 되고,
생활고를 등에 진 소녀의 학비보탬이 되고 때를 거르는 어린이들의 신나는
밥이 되는 세상.

아름다운 음악에 기립박수를 보내듯, 끝없이 올라가는 사랑의 숫자를 보며
정치권의 혼란과 온갓 부패를 씻는 청량한 희망을 품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2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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