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이 구조조정계획을 마련하는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김대중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 1월 4대 그룹총수간의 회동에서
"주력 업종 중심의 구조조정"을 처음 언급한 때부터 따지면 8개월여만에
마무리된 셈이다.

그러나 본격 협상이 시작된 7월말부터 보면 5대그룹이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기업들은 사실 자체 구조조정외에 재계 차원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이었다.

협상상대방이 있는 구조조정의 속성상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논리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부분이 고통분담에 동참하는데 기업만 빠졌다는 여론에
밀린데다 정치권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7월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을 비롯 박태준 자민련 총재,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 등 고위
인사들은 빅딜 문제를 간간이 언급하면서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들은 7월26일 제1차 정.재계간담회를 가진 이후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8월 7일 제2차 정.재계간담회에서 기업들은 정부에 8월말까지 자율 구조
조정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경련은 8월10일 5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그리고 13일 2차 회의에서 5대그룹이 우선 구조조정계획을 내놓기로 합의
했다.

세차례 공개회의 외에 태스크포스는 수시로 만나 의견을 조율했다.

태스크포스 밑에는 구조조정 관련 업체들의 임원급이 참여하는 실무위원회도
만들었다.

7개 업종의 구조조정안을 마련키로 한 뒤에는 장소를 옮겨가며 2자, 3자
협상을 계속했다.

전경련은 조사1부 직원들을 파견, 협상을 도왔다.

어느 정도 협상안의 윤곽을 잡은 지난달 31일 5대 그룹 총수들은 호텔롯데
에 모여 실무진들의 협상 결과를 토대로 일부 합의안에 서로 서명키로
했었다.

그러나 이를 산업자원부 측에서 흘리는 바람에 합의서명 절차가 무산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경련은 반도체를 제외한 협상안을 발표하느냐, 반도체를 포함하느냐
여부를 청와대측과 상의하기도 했다.

결국 반도체를 포함하기로 하고 1,2일 최종 협상을 벌였으나 완전 타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태스크포스 구성에서 발표까지 20일이 채 못되는 기간 동안 손병두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거의 전경련회관을 비웠다.

극비 유지를 위해 차량도 전경련회관에 두고 택시를 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