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보는 한국경제의 현실과 미래는 어떤가.

그들의 눈은 우리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보다 더 객관적이고 정확할 수
있다.

외국인의 분석에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경제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경제개혁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한국의 경제위기와 개혁프로그램"이란 주제로 주한 외국기업및 금융
기관 관계자들을 초청, 매주 좌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사회는 전성철 국제변호사가 맡는다.

이번 주에는 딕 반덴함 ABN.AMRO은행 서울지점장과 매튜 웨이크 스탠더드
차터드은행 서울지점장이 첫 좌담회 토론자로 참석했다.

"한국의 경제개혁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좌담회 내용을 싣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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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딕 반덴함 < ABN.AMRO은행 서울지점장 >
매튜 웨이크 < 스탠더드 차터드은행 서울지점장 >
전성철 < 국제변호사 > : 사회 ]]


<>전성철 변호사=현재 진행중인 한국의 경제개혁방향과 속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매튜 웨이크 지점장=방향은 옳게 잡았다고 본다.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전 변호사=그런데도 개혁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시각이 많다.

정부가 은행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은행 자체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떻게 기업의 구조조정을 이끌 수 있겠느냐는 식이다.

여덟살짜리 아이가 고통으로 아파하고 있는 열여덟살짜리 청년에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웨이크 지점장=한국정부의 좌절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구조조정을 신속히 이루지 않으면 국민들이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좌절감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잘 하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신호를
정부가 받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물론 한국기업들은 자산을 해외에 매각하는등 여러가지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그렇다고 은행을 내세워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재촉하는 것이 이상적인
처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은행들은 자기 앞가림이 더 급하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할만큼 노하우를 축적하지도 못했다.

<>딕 반덴함 지점장=한국 은행들의 리스크 매니지먼트(위기관리)는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시키는대로만 고분고분하게 움직여 온 탓이다.

정부가 주주노릇을 한 것이다.

구조조정은 해야겠고 기업들 스스로는 자기살을 도려내지 못하고 있어
정부가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다시 정부가 은행권을 통해 기업구조조정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또 다른 관치금융으로 비쳐지고 있다.

은행권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정부가 안고 있는 경제개혁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전 변호사=남덕우 전국무총리도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해 은행에 추가대출
등의 부담을 주기보다는 부실기업갱생공사 같은 것을 만들어 부실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반덴함 지점장=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기업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우량기업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기업이 구조조정 등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결국 세계시장논리가 개혁을
강요할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소요되는 운송비나 시간이 부산에서
노테르담까지 가는 그것들과 맞먹는다면 세계 기업들과 경쟁을 해나갈수가
없다.

<>웨이크 지점장=구조조정을 해야만 한국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냉엄하게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고 본다.

어떤 기업이라도 부실하고 경쟁력이 없으면 간판을 내려야 하고 대량 실업도
감수해야 한다.


<>전 변호사=최근 논의되고 있는 빅딜도 바람직한 구조조정의 한 방안이
될 수 있는가.

<>웨이크 지점장=빅딜에 찬성한다.

세계시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업종에서는 오히려 빅딜로 몸집을
불리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수 있다.

빅딜과 함께 다운사이징 등으로 핵심사업부문을 키우는 전략도 세워야 한다.

왜 대기업들이 소매업에 뛰어드는지 이해가 안간다.

대기업으로의 경제력집중을 분산시키는 것도 한국경제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반덴함 지점장=빅딜이 경제력을 집중시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시장논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전 변호사=한국에서는 은행이나 기업의 소액주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하게 낼수 없는 것도 큰 문제다.

일반주주들이 대기업들을 적절히 제어할 능력이 없다.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감독할 능력도 없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수익성과 책임경영보다는 외형성장에 집착한다.

<>웨이크 지점장=서구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이 잘 발달돼 있다.

일반인들이 저축을 통해 키운 연기금펀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연기금펀드는 주주중시주의를 표방하고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대신해 철저히 주주권을 행사한다.

소액주주들이 기관투자가들을 통해 은행이나 기업들에게 자신의 힘을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발휘하는 것이다.

한국도 이런 기관투자가제도를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전 변호사=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웨이크 지점장=정부란 정확한 목표를 정해주고 그 목표를 향해 가라고
일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목표를 정해 놓았다면 그 방향대로 가지 않을 경우 경고하는
것이다.


<>전변호사=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부를 평가한다면.

<>웨이크 지점장=새정부 초기 국민들에게 고통과 희생을 설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국제사회를 설득, 대한국 투자분위기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자질을 갖춘 리더십이 중요하다.

<>반덴함 지점장=앞으로가 문제다.

한국정부가 외국인들의 신뢰를 계속 얻어내야 한다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난 연초 한국정부는 경제개혁의 의지를 대내외에 확인시켜 줌으로써
국제적인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투자가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은 이런 의지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웨이크 지점장=최근 현대자동차 노사분규 해결과정도 그렇다.

일부 한국사람들은 정부가 개입하길 잘 했다고 보고 있으나 외국투자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만족스러운 과정을 통해 해결됐다고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의 겉모양만 냈지 구조조정을 위해 아무것도 얻은게 없다고 대다수
외국인들은 평가하고 있다.

<>반덴함 지점장=개혁은 한국인들에게 고통인 동시에 기회다.

진정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다.

<>웨이크 지점장=어려움을 피하다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기업이나 정부나 다를 게 없다.

개혁이란 본래 인기가 없는 것이어서 정치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표를 잃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덴함 지점장=경영진은 자신의 결정이 인기가 없을지라도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

<>웨이크 지점장=마거릿 대처 전영국수상은 냉혹한 불도저라 불렸다.

비록 당시에는 그의 개혁정책이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지금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과 여론의 반응에 얽매이기보다는 향후 역사책에 어떻게 실릴 것인지를
염두해 둬야 한다.


<>전 변호사=외국인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부분은 여러가지다.

한국정부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기업들에게 경쟁력 없는 사업부문을 없애고 정리해고를 통해 구조조정을
하라고 재촉하는가 하면 인턴사원을 뽑으라고 촉구하고 있다며 혼란스런
반응을 보인다.

<>반데함 지점장=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모순된 행동이나 모습을 보일
때 혼란스러워한다.

한국인들은 때로 외국인의 시각을 오해하고 불합리한 것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나는 지난해말 외환위기때 한국의 신문이나 방송보도내용에 의도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차라리 외국언론이 전하는 한국관련 보도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해서였다.

한국인들의 모순성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전통적인 유교사상탓인가.


<>전 변호사=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유교사상도 하나일 수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에 성공하다 보니 다소 자만심에 빠진 것도 배경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관료주의나 민족주의도 원인일 게다.

<>웨이크 지점장=한국이 그동안 이룩해낸 경제발전의 과실을 만끽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성공한만큼 과도한 자신감을 보일 수도 있다.

한국경제는 지난 80년대까지는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90년대 들어서
성장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인식은 했어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외형성장에만 골몰했지 왜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지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았다.

일상생활속에서도 형식에 얽매이거나 외형에 너무 신경쓰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는 분명 유교사상의 영향인 듯하다.

구조조정과정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성공하려면 외형보다는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정직하게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드러낸다면 예상외로 해결책을 일찍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 변호사=한국경제가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시간이
걸린다고 보는가.

<>웨이크 지점장=5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

<>반덴함 지점장=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웨이크 지점장=당장 올해만 해도 큰폭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내년께 소폭 마이너스 성장이 유지되거나 다시 플러스성장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다만 2000년 전에 경기가 바닥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은행이나 기업들의 구조조정과정은 이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단시간에 완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부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대기업의 막강한 힘을 분산시키지 않는한 시장논리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구조조정의 하나로 한국 기업들이 속속 외자를 도입하고 있다.

외국인 주주들의 입김이 갈수록 거세진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들의 경제력집중현상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정리=조정애 기자 jcho@ / 김홍열 기자 comeon@ >


<>ABN-Amro은행

본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다.

91년 알지메느뱅크 네덜란드(ABN)와 암스테르담-로테르담뱅크(Am-ro)의
합병으로 설립됐다.

97년 현재 전세계 70개국에 1천9백개 지점이 있으며 자산규모는
4천9백억달러.

네덜란드 최대 은행으로 유럽에서 4번째, 전세계에서는 8번째다.

한국에는 79년 암로뱅크가 진출했으며 현재 직원은 64명이다.

97년 총7백80억원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스탠다드 차터드은행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다.

1969년 스탠다드은행과 차터드은행의 합병을 통해 설립됐다.

스탠다드은행은 1863년, 차터드은행은 1853년에 각각 세워진 유서깊은
은행이다.

97년 현재 전세계 49개국에 4백80개 지점이 있다.

19세기말 차터드가 유럽계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제물포)에
사무소를 냈다가 1910년 철수했으나 68년 현재의 지점을 열었다.

한국지점은 직원이 1백명이며 97년 5백80억원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