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온통 지뢰밭이다.

한곳의 소요가 가라앉는 듯싶으면 다른 쪽에서 터진다.

폭발의 유탄이 다른 곳의 뇌관을 건드려 2차폭발을 일으키고 다시
그 파편이 첫 폭발지로 날아와 상황을 악화시킨다.

말 그대로 악순환의 굴레다.

첫 진앙지인 아시아는 성장률 감소와 실업증가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다.

남미와 캐나다는 이 통에 원자재를 팔지못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

급기야 러시아는 아시아위기의 파장을 견디다 못해 모라토리엄
(대외채무지불유예)을 선언하고 말았다.

러시아의 위기는 인근 동유럽과 중부유럽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그리고 아시아와 남미로 다시 돌아오며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피난처인 미국도 흔들리게 됐다.

"세계화된 위기"로 발전된 것이다.

러시아 위기를 계기로 세계 도처에 깔려있는 불안요인들을 점검해 본다.

<> 아시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이나 루블화 평가절하보다 세계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줄 위험요소들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중국 위안(원)화 평가절하 가능성, 홍콩 달러화의 페그시스템 붕괴 우려,
엔화폭락 가능성등 뇌관 투성이다.

8%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중국은 현재 7%성장에 머물러 있다.

중국은 양쯔강 홍수피해가 계속 커질 경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위안화
절하라는 초강수를 둘 수 있다.

엔화가 다시 폭락세로 돌변, 달러당 1백50엔대로 내려가면 위안화
평가절하 압력은 현실화된다.

위안화 절하는 러시아의 루블화 평가절하나 모라토리엄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세계경제에 안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홍콩의 통화페그제도 위험하다.

이달들어 홍콩금융시장은 국제투기자본의 집중공략을 받고 있어 페그제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계속되고 있다.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1.4분기 마이너스 2.8%에 이어 2.4분기에는
마이너스 5%로 더 악화됐다.

이처럼 홍콩경제의 펀더멘털이 취약해 홍콩달러화와 증시에 대한
국제투기세력의 공격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는 홍콩금융당국이 투기세력을 격퇴하고 있지만 최종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은행개혁안이 야당의 반대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등
경제개혁이 지지부진하다.

엔화가 러시아사태후 예상외의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언제 폭락세로
돌변할지 알수 없는 상황이다.

최악의 상황인 내수경기는 한동안은 회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경제는
지난 2.4분기 성장률이 모두 마이너스 6~10%로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다.

말레이시아 역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곧 발표될 싱가포르와 필리핀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하나같이 실업은 사상최악의 상황이다.

<> 미국 =버블붕괴 가능성이 없지않다.

경기둔화 조짐이 완연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지난 2.4분기에 1.6%로 전분기(5.5%)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금융당국이 물가불안을 우려, 고금리정책을 지속하고 아시아경제 위기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미국에 상륙하면 올 연말쯤엔 미국의 경제성장도 멈출
수 있다.

이때문에 올들어 급격히 오른 미국주가가 어느 순간 대폭락하는
버블폭발의 우려가 살아있다.

이와관련, 최근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미국정부가 제때에 손을 쓰지
않으면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우려대로 버블이 붕괴되면 세계경제가 초토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 유럽 =러시아사태가 더 악화돼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경우
유럽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러시아의 최대 채권국인 독일과 제3위 채권국 프랑스가 러시아쇼크를
극복해낼 수 있을 지 여부가 유럽경제 안정의 관건이다.

독일경제의 성장력 감퇴는 내년에 출범하는 유러화에 악영향을 미쳐
유럽경제 전체가 크게 흔들리는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위기의 파장이 미치기 시작한 가운데 러시아사태까지 터져
경제전망이 밝지 않다.

영국은 이미 경기둔화를 겪고 있어 잘해야 올해 성장률이 1%대에 그칠
전망이다.

프랑스 역시 올해 경제성장률이 작년의 3%대에서 2%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중남미및 동구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멕시코의 통화평가절하 여부가
최대 변수다.

원유나 구리등 국제원자재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선진국과 아시아의
원자재수입이 더 위축되면 러시아를 쫓아 통화가치를 끌어내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유가하락으로 재정적자가 확대일로다.

특히 멕시코 페소화는 연일 사상최저로 떨어지고 있어 지난 94년과 같은
통화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러시아에서 데인 외국인투자자들이 중남미에서 자금을 본격적으로
회수하게 되면 중남미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이렇게 되면 중남미에서는 통화평가절하 도미노가 발생하고 그 결과
세계경제는 또 한차례의 폭풍을 맞게 된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의 경제사정도 좋을 게 없다.

러시아경제가 안정을 찾지 못하면 대러시아 수출비중이 높은 이 지역은
러시아경제의 뒤를 따를 공산이 크다.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국제경제 상황이 금융자본의 전횡등에서
비롯된 세계경제의 "체제 피로"탓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은 심각한 문제는 상황이 훤하게 보이는데도 딱 부러지게 쓸만한
대책이 없다는 게 바로 지구경제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