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각지를 강타했던 집중호우.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했던 그 폭우도 8월과 더불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려 한다.

물난리 뉴스가 현대자동차사태와 자리를 바꾸는듯 하더니 어느새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무슨일이든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집단건망증 탓일까.

그러나 올여름홍수는 결코 일과성 사건쯤으로 넘길일이 아니다.

피해가 워낙 큰 까닭이다.

사망 2백40명, 이재민 18만명, 재산피해액 1조4천억원이라는 통계가 이를
말해 준다.(중앙재해대책본부)

어쨌든 IMF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은 수마로 2중의 부담을 지게 됐다.

아직도 3백20세대 9백여명의 이재민들이 자기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동가식서가숙하고 있다.

물론 민관군이 이들을 돕기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복구작업도 활발하다.

정부는 중앙 합동조사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내달 9일까지 수해 복구계획을
짤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만의 재해대책은 한계가 있다.

여기서 선진국들의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된다.

특히 일본의 재해대책은 눈여겨볼만하다.

일본은 지난 95년 고베대지진이후 건축물 내진개수촉진법을 제정,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따라 81년 이전에 지은 건물은 안전진단을 받도록 됐다.

기준에 미달하면 강진에 견딜수 있도록 건물을 개보수 해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공공건물에 대한 긴급진단을 실시하고 크게 당황했다.

아파트단지 등 기존건물을 헐고 다시 지으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그럴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때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지진에 의한 흔들림을 억제하는 보강
공법이 개발됐다.

건물벽안에 내진 철강재를 끼워 넣거나 건물 밑바닥을 파고들어가 진동을
흡수하는 두꺼운 고무판을 붙이는 공법이다.

건설업계가 이 신공법을 내놓자 지자체와 건물주들은 쾌재를 불렀다.

경비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백화점전쟁이 치열한 도쿄 신주쿠에서는 게이오백화점이 신공법으로
내진개보수를 끝냈다.

우에노의 서양미술관 본관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시내 야마시타초아파트단지는 이 내진 보수공사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지자체 관계자들이 견학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건설성은 그 시장규모가 20조~30조엔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거품경기 붕괴로 고전하는 일본건설업계로서는 그야말로 예상치 못했던
큰 시장인 셈이다.

이처럼 일본은 지진피해와 불경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살리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방재교육이다.

그들은 어릴때부터 몸에 배도록 교육하고 있다.

보육원시절부터 지진대피요령을 가르친다.

지리산 폭우참사직후 문제의 야영장에 텐트를 치는 우리네 한국인과는
비교가 안된다.

8월 홍수는 우리사회에 만연된 안전불감증 재난불감증을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차제에 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같은 전문기구의 설립도 검토할만
하다.

그래야만 일사불란하게 재해에 대응할 수 있다.

정부각기관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재난관리활동은 8월과 더불어 사라져야
한다.

< khc@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