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 대우경제연구소장 >

구조조정내용은 단계별로 살펴볼 수도 있다.

첫째 단계는 기존의 부실내지 거품제거이다.

둘째는 추후에 비슷한 부실이 발생하거나 누적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셋째는 과거의 틀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의
부작용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일이다.

넷째는 미래를 향해 먹거리를 확보하고 외국자본의 국내진출확대 등 위기
극복후의 체제와 관련한 문제점을 보완하는 일이다.

구조조정이 갓 실천되기 시작한 현단계에서 구조조정의 걸림돌과 돌파구에
관한 논의는 주로 기존의 부실을 제거함과 직결된 부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왜 과거의 거품과 부실제거는 현재 잘 안되고 있을까.

기업 및 금융기관의 퇴출이나 구조조정이 잘 안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강제로 퇴출시키는 경우 누가 무슨 기준으로 판정을 하느냐에 대해 동의를
안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죽었다고 판정난 기업을 협조융자 등을 통해 살려내는 경우와
고통받는 대중에 대해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비전문가인 관료에 의해
단두대에 오르는 기업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려는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조차 구체적 행동단계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큰 제도와 관행이 많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관련 세금이 많고 금융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기타 투명성.유연성제고
와 관련돼 법률적 장애가 많기 때문이다.

눈높이문제도 있다.

기업계나 금융계 노동계 공공섹터 모두가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잊지 못해
새로운 출발을 못하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가치관 확산속에서 의욕과 기초체력은 떨어지고 활기가 없어지니까
구조조정이라는 대수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폐기되는 자원인 설비나 인력의 수용과 재활용문제를 담당할 사회시스템이
없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과잉설비를 폐기할 때 그와 관련된 금융제공자가 없고, 인력의 경우 사회
보장이 안돼 있으니 미래를 겨냥한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할 수가 없다.

이같은 걸림돌을 제거하는 게 초기단계의 구조조정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돌파구이다.

첫째 원칙적으로 퇴출예정자의 선정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또 선정된 퇴출자는 철저히, 빨리 청산되면서 관련된 이해관계자 모두가
퇴출에 이르게 된 책임을 골고루 지도록 만들어야 구조조정의 취지에 맞는다.

모든 관계자들이 조직의 생존을 위해 동시에 같은 정도로 발버둥치게
만들어야 전체적으로 소요재원을 줄일 수 있다.

둘째 퇴출대상이 되기전에 변신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금융기관 근로자
재산소유자 등이 별 부담없이 다양한 형태의 구조조정방법을 선택 실천할
수 있도록 세법 공정거래법 기타 법체계를 빨리 개편해야 한다.

자본시장육성 소비자금융확산 벤처캐피털 벌처펀드 ABS 등 다양한 금융
체제개선이 선진국수준으로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쓰레기는 누적시키면 안되는 법이다.

퇴출의 단위는 될 수 있는 한 세분화되고 시기적 장소적으로 분산되는게
상책이다.

우리의 경제조직은 연고자본주의에 젖어 있고, 법질서는 집단이기주의앞에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째 이해관계자간에 빅딜이 이루어져 사전에 퇴출대상이 최소화되도록
하는게 상책이다.

정부는 금융구조조정에 공적자금을 적시에 투입하고 기업구조조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규제혁파,준조세와 공과금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공공부문개혁은 제일 먼저, 제일 확실히 추진되는 모습이 요구된다.

대신 대기업들은 뉴프런티어개척과 이노베이션을 통해 자본생산성을
올리면서 정리해고 등을 자제해야 한다.

금융기관들은 대출금의 출자전환이나 상환기간연장과 관련한 부담을 새로운
금융상품개발, 은행조직의 재구성 등을 통해 흡수 소화해야 한다.

근로자들은 과감한 임금삭감과 노동생산성을 제고시키는 제도도입과
관행실천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구상무역 산업분할 환율조정 등 아시아인끼리의 자구노력도 시도할만한
값어치가 있다.

다섯째 미래가 있는 구조조정의 문제이다.

치울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나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면 구조조정은 실패한다.

시간과 우선순위의 선택문제가 중요하다.

대수술받으면서 체력보강(수출촉진, 금융원활화, 문화산업, 행정서비스의
민간사업화)도 잘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대책없이 대강 잘라내는게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한 부분을
최대한 남기고 수선하면서 기능을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정책집행과정에서 노련한 의사와 같은 섬세함,치밀한 단계적 프로그램,
최종단계의 산업.금융시장.경영.노동.사회의 모습,그에 이르는 소요시간이
투명하게 보여져야 한다.

재벌의 사업구조처럼 잘 모르는 분야에 끼어들지 말고, 구조조정의 추진
체계가 역할분담원칙하에서 잘 움직이도록 만드는게 중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