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위안부 문제는 89년말부터 제기됐다.

91년 김학순씨가 처음 종군위안부였음을 증언했으며 93년 "종군위안부들의
증언집"이 발간됐다.

93년 8월엔 남북한 대표의 요구에 따라 제45차 유엔 인권소위에서 정신대
문제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보고관 임명 결의안이 채택됐다.

그 결과 96년 "쿠마라 스와미 보고서"가 제출돼 유엔 차원에서 처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이 거론됐다.

광복 50년을 맞은 시점에 일제의 군위안부 동원을 "여성의 노예화"로
규정하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및 관련책임자 처벌과 손해배상을 강도높게
촉구한 맥두걸보고서가 제출된 것은 의의가 크다.

유엔인권위 산하 "차별방지.소수자보호 소위원회(차별소위)" 특별보고관인
미국의 게이 맥두걸 변호사는 "전시 조직적 강간, 성적노예 및 이와 유사한
행위에 관한 최종보고서"를 통해 위안부문제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는 보편적
관할권을 가지므로 다른 국가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시효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정부는 여전히 위안부 배상문제는 청구권협정 등으로 해결됐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빌리브란트 총리가 유태인 학살현장에 엎드려 "독일민족의 이름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범죄가 행해졌으며 우리는 세계의 유태인에게 용서를 빈다"며
거듭 사죄한 독일의 태도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우리정부는 한.일관계에 있어 되도록 과거사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지향적
으로 풀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종군위안부 문제는 참혹하고 비인도적 인권침해 행위다.

피해자들은 꽃같은 나이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거세당하고 일생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에 쫓기는 참담한 생활을 해왔다.

정부가 제나라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다.

위안부기념관을 짓고 지원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상처를 일본정부의 진정한 사과로 치유받고 싶어하는 피해자들의 바람
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맥두걸보고서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진상 규명과 일본정부에 대한 국제법상
배상청구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