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50년"의 아침이 밝았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전세계에 고고성을 울린 지도 어언 반세기.

돌이켜보면 고난의 세월이 더 길었다.

나라를 세운 기쁨을 누릴새도 없이 전쟁의 참화는 국토를 할퀴고 지나갔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반도를 두동강냈고 그 질곡은 여전히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짓누르고 있다.

"4.19"와 "5.16", 그리고 "5.18"과 "6.29"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속에서 우리는 경제적으로 "절대빈곤의 시대"를, 정치적으로 "어둠의
세월"을 건넜다.

그렇게 우리는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했고 복지사회건설에
한발한발 다가갔다.

하지만 90년대의 풍요뒤에서 자만이 싹트고 있었다.

스스로의 성취에만 도취돼 세계의 변화에 둔감했던 탓이다.

선진국사교클럽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지 1년도 채 안돼
우리는 사상초유의 환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기에 이른다.

그 와중에서 건국 이후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IMF구제금융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경제난이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지난 50년간 우리가 위기로부터 자유로웠던 날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절대적 빈곤과 싸워야 했고 끝이
보이지 않던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나서는 또 정치적 대혼돈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제의 잔재가 독립의 후손을 단죄하고 불의가 정의를 심판하는 현대사의
굴곡도 경험했다.

마침내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가혹한 룰이
한국민의 삶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보면 그 많았던 위기속에서 한국민이 좌절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시련을 만날때마다 우리는 강해졌고 위기는 기회의 발판이 됐다.

한치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에서조차 오기와 뚝심으로 다시 일어선
나라가 한국이었고 그 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었다.

"건국 50년"의 의미는 나라를 세운 지 50년이 지났다는 단순한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 있지 않다.

정치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수사(rhetoric)일 수만도 없다.

지난 5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과 비전을 다짐하는 전환점.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제 2건국"의 진정한 가치다.

분명 우리는 지금 창조와 파괴의 전환점에 서있다.

문제는 무엇을 파괴하고, 어떤 것을 새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국가사회 전반의 "고비용 저효율구조"는 가장 먼저 혁파되어야 한다.

계승해야 할 "한국적 가치"와 버려야 할 "한국적 관행"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이미 생존의 필요조건으로 부상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네탓이오"만 반복하는 무능과
무책임, 국민의 이해보다 정당의 이해를 앞세우는 정략주의 등 정치 사회
경제 각부문의 의식구조에도 대수술이 필요하다.

역사란 "시대정신의 발현"이라고 독일의 역사철학자 헤겔은 갈파했다.

과거를 떨치고 새로운 건국 50년을 맞는 지금 한국민의 시대정신은
곧 "제2 건국"의 이념이다.

그 구체적인 지향점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관치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민족주의에서 세계주의로,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공업중심에서
지식산업중심으로, 남북대결에서 안보와 화해의 병행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과거 50년을 돌아보는 것은 새 50년을 일구는 밑거름이 될 때라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날의 잘못과 부족을 되짚어 전진을 향한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라를 세울때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한국민의 앞날은 그다지 어둡지
않다.

이보다 더한 시련도 끝내 이겨내온 우리민족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50년 동안 그 숱한 위기를 극복해오면서 한국민은
배웠다.

위기는 기회의 또다른 얼굴이며 위기 없이는 도약도 없다는 것을.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