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판매하는 TV 등 일부상품의 가격은 제조원가의 60~70%선이다.

30~40%의 손실은 메이커나 우리가 떠안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같은 가격정책에 호응하는 메이커만을 택할수 밖에 없다"(할인점
E사 K임원)

12일부터 시작된 월마트와 E마트의 가격인하경쟁은 유통업체의 메이커지배
시대가 개막됐음을 의미한다.

두 업체는 대우 29인치 TV(2965FWS) 펩시콜라 등 12개 품목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리며 이날 오전 최저가경쟁의 불을 댕겼다.

오후에는 눈치싸움까지 벌이며 한차례씩 가격을 추가인하, 하룻동안
두번이나 값을 내리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이 뿐만 아니다.

그랜드마트 킴스클럽 홈플러스 등의 다른 대형할인점들도 12일부터 즉시
동종상품에 대해 비슷한 폭의 가격인하로 경쟁대열에 뛰어들었다.

이로써 월마트의 선제공격으로 촉발된 가격 인하싸움은 단숨에 할인점업계
전체로 확산됐다.

"다른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10~15% 싸지 않으면 물건을 납품받지
않겠다"고 할인점들은 노골적으로 제조업체에 통보하고 있다.

제조업체의 부담은 이미 "지난해 "최저가격 보상제"를 실시할 때부터
예고됐었다"(제일제당 마케팅 담당)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간 납품가를 둘러싼 헤게모니 쟁탈전이 월마트의
국내 진출 이후 완전히 유통업체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이제 마크로와 E마트에서는 특정품목이긴 하나 TV세트를 제조원가보다
30~40% 싼값에 살수 있게 됐다.

동네 슈퍼에서 4백50원하는 농심 신라면도 월마트에서는 2백90원에 살 수
있다.

물론 이같은 가격인하로 소비자들은 톡톡히 이익을 보지만 그 이익만큼
제조업체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때문에 "가격인하요인을 납품업체에 모두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농심마케팅
담당자)고 제조업체는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전3사의 제품을 납품해온 한 전자유통업체가 최근 까르푸의 가격인하
요청에 반발, 납품을 포기하기로 결정한게 그 대표적인 예.

"할인점들이 갖고있는 막대한 구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밑지고 팔 수
없다"는게 그 이유이다.

제일제당도 비트 등 월마트의 납품가인하 요청을 거절키로 방침을 확정했다.

다른 유통업체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제일제당 마케팅담당)는
이유에서다.

유한킴벌리도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리게된다"며 월마트와 E마트의 납품가
인하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제품의 인지도가 높은 농심의 경우 월마트와 납품가조정 협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월마트 등의 요구를 일단 거부한 업체들도 결국엔 다점포화를
통해 구매력을 강화하고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들어갈 경우 이를 수용할수
밖에 없을것"(N식품 관계자)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빙그레가 월마트 E마트 까르푸의 아이스크림 납품가 인하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나 애경산업이 최근 "한시적으로 손해를 보고서라도 납품을 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한 것은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제조업체는 판매비 부담을 줄이고 군살을 빼는 방안을
짜낼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유통시장은 IMF경제위기에 따른 구매력감소와 불황으로 할인점업이
쭉쭉 뻗을수 있는 토양이 갖춰진 상태다.

이달부터는 제조업체의 공장도가격 표시의무도 없어졌다.

내년부터 권장소비자 가격도 사라진다.

판매자가 자산이 받을 가격을 표시하는 오픈 프라이스제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상품구입에 있어서는 소비자가 주도권을 쥐고 그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판매상만이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일본유통업계에서 가격파괴의 기수로 불리우는 나카우치 이사오 다이에
회장의 얘기가 지금 한국에서도 실현되고 있다.

< 김영규 기자 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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