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새뮤얼슨 미 MIT대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개혁권고안의 실효성에
대한 논쟁은 끝났다고 말한다.

IMF가 요구하는 방안을 버리고 제3의 위기 극복방안을 모색했던
인도네시아 등에서 이미 실패사례가 드러났고 홍콩 역시 환율 방어라는
목표를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새뮤얼슨 교수는 한국이 아직 위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개혁의
옳은 길을 걷고 있는 동안은 성공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하고 근로자들의
해고 반대투쟁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이 특별기고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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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가 아시아 전체를 계속 흔들어대고 있다.

한국도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경제전반의 붕괴위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

홍콩의 경제난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홍콩은 유럽에서도 잘사는 나라인 프랑스와 독일에 버금갈만한 국민소득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과 주가 폭락이 계속되면서 버블이 붕괴된다면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홍콩이 아시아 위기 수개월이 지난 지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그동안 긴축예산 편성등 IMF의 이행조건들을 강하게 비판해온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교수 같은 전문가들은 IMF의 자금지원이 원화의 안정을
지원하는데 쓰였더라면 한국은 보다 쉽게 다시 성장궤도로 되돌아왔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일찍부터 나는 IMF의 이행조건들을 받아들이는 방법 외엔 한국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IMF의 자금이 환율방어라는 절망적인 도박에 사용될 경우 결국
몇주내에 수십억 달러가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에 싸였었다.

그 판단은 홍콩의 진행상황을 보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홍콩과 중국이 홍콩달러의 미달러화
연동제도(페그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출혈을 하고 있는가를
보고 있다.

홍콩은 환율 방어는 해내고 있지만 더욱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환율 방어만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의 경제 정치적 상황변화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은 삭스 교수와 존스 홉킨스대학의 이단적
학자인 스티브 헨케 교수가 부추기는대로 환율제도를 둘러싼 정책적 혼선을
계속해왔다.

수하르토는 무망하게도 통화보드제라고 불리는 페그제 도입을 고집했고
그 결과 치르지 않아도 될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수하르토 자신의 하야도 그 부산물에 다름아니며 스위스은행에 예치한
일가족의 재산도 이제는 찾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인도네시아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국민들의 소득도
더욱 줄어들었다.

통화보드제는 외환보유고가 제한적인 상황이었던 만큼 처음부터
도입해서는 안될 제도였다.

말레이시아는 이와 반대되는 측면에서 또다른 교훈을 주고 있다.

한국의 상황이 나쁘다지만 말레이시아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게다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더욱이 말레이시아는 "경제가 나빠진 원인이 서방의 투기자본가들과
유태인들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광신도같은 총리가 통치하고 있다.

IMF의 어떤 합리적인 처방도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
이같은 상황아래서는 적용되기 어렵다.

이같은 아시아지역 전체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한국이라고 해서 특별히
성공에 가까워져 있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IMF가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추가로 자금을
마련한다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장래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경제회복은커녕 외채상환 일정을 지키지 못해
모라토리엄에 들어가거나 또는 파산 상태로 치닫는 것조차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아직 여러가지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은행에 지고 있는 부채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또 한국의
금융기관이 외국에 어느정도의 채무를 지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직 없다.

부실채권과 관련해서 한국은 최소한 일본 수준이라도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일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규모는 어느정도까지는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물론 일본의 부실채권을 모두 상각처리한다면 몇조 달러에 달할 것이다.

그것은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상각을 승인해준 것보다 몇배 더 많은
액수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방법론이 한국 정부에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두가지 점에서 그렇다.

우선 나는 한국의 모습을 평가하는데 일본의 패턴을 활용하는 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여러가지 역사적 이유 때문에 일본을 특히 싫어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발전모델은 일본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잘못된 점도 똑 같다.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역시 두 나라에서 모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독단과 자기우월에 빠진 관료들이 아무 생각없이 단기자본을 끌어들여
금융사업을 하도록 부추긴 것도 비슷하다.

이같은 행위는 정상적인 회계기준을 적용할 경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은 첫째 최근 수개월 동안 달성한 그럴듯한
환율안정이 사실은 매우 위태로운 승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둘째 한국 금융기관의 엄청난 부실을 처리하는 고삐를 다소는 늦추어도
무방하지 않느냐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셋째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데 대한 최대한의 경계를 가져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 대한 공포감은 특히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꼭 필요한 자기희생을 감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스스로 개혁의 바른 길에서 일탈하지 말아야 하며 이제부터 진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과거 군사정권에 대항해 극단적인 투쟁을 해왔다.

또 이 과정에서 서울의 중심가들은 과격한 시위대와 계급투쟁하는
전투적인 노조로 가득 찼던 때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절대 재연돼서는 안된다.

계급투쟁은 20세기초인 지난 17년 러시아와 중국에서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이 모든 것은 이미 역사속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계급 투쟁적 양상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만일 이런 상황이 재연된다면 한국 사회는 라틴아메리카의 집단주의
수준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한 세기가 끝나가는 마당에 계급투쟁으로부터 한국에서만 유독 더좋은
결과가 나올리가 있겠는가.

한국의 장래는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한국인들이 어려운 경제환경에서도 굳건히 개혁을 향한 옳은 길을
걸어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 정리=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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