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전 10시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이 들어선 서울
여의도 증권감독원 건물 15층.

TV로 상업 한일은행의 합병발표중계를 지켜본 직원들은 한결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금융개혁의 "총사령부"가 학수고대하던, 금융구조조정의 기폭제로 손꼽아
기다리던 은행합병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상업 한일은행 합병으로 포만감을 느낀다"

"5개은행 퇴출은 맛보기였고 지금부터가 진짜다"

기획단 관계자의 말처럼 상업-한일은행 합병은 한국금융사의 전환점이다.

무엇보다 외자유치로 모든게 해결될 것으로 봤던 조흥이나 외환은행,
은행이름과 경영진구성 인원및 조직감축 등의 문제로 옥신각신 다투는 하나
보람은행이 모두 합병급류에 휘말려 있다.

반면 국민 주택은행은 급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인투자가를 붙잡고
"홀로서기"를 외친다.

은행권은 상업 한일합병발표이후 "합병파" "홀로서기파" "관망파"로
3분되는 조짐이 역력하다.

은행마다 가야할 길을 선택할 때가 온 것이다.

"26개 일반은행중 3~4년뒤에는 4개대형은행과 틈새은행 몇개만 살아남는다"

지난해말 IMF사태직후 나온 매킨지 보고서의 골자다.

이 보고서는 당시만해도 "흥미있는 전망" 정도로 비쳤다.

7개월여가 흐른 지금은 금감위 이헌재 위원장을 비롯 구조개혁기획단
관계자들이 이 보고서를 인용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 금융전문가들도 이런 은행권 재편구도에 고개를 끄덕인다.

빅뱅이 일단락되면 은행권 판세는 대형은행간 합병을 통한 3~4개 선도은행,
지역경제에 특화한 소규모지역은행, 틈새시장에서 소매금융이나 주택금융
부문에 특화한 우량중견은행 등으로 짜일 것이라는게 지배적 관측이다.

순간의 선택이 몇년뒤 은행의 얼굴과 운명을 가른다는 얘기다.

최대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누가 선도은행이 되느냐다.

첫번째 후보는 상업-한일 합병은행.

자산규모 1백조원이 넘는 초대형은행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합병 1호"라는 프리미엄도 무시못할 요소다.

금감위 관계자도 "시범 케이스인만큼 화끈하게 지원하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다.

다음 후보는 합병상대를 구하고 있는 조흥이나 외환은행.

조흥은 신한 주택 장기 보람, 외환은 한미 국민 등이 짝짓기상대로
거론된다.

조흥-외환 합병도 그릴 수 있는 밑그림중 하나다.

성사된다면 상업-한일에 버금하는 합병임에 틀림없다.

두 은행이 짝짓기상대를 끝내 구하지 못할 경우 결국 서로를 쳐다보며
"한집 살림"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다른 선도은행은 하나 보람 장기 신한은행, 그리고 민영화될 제일
서울은행에서 나올 수 있다.

하나+보람, 하나+보람+장기, 하나+보람+장기+신한, 제일+서울 등 다양한
조합이 입에 오르내린다.

제일 서울은행의 경우 재계컨소시움이 인수, 초대형은행으로 탈바꿈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틈새시장은 큰 것보다 알찬 것을 원하는 은행들의 "안식처".

외자유치를 했거나 추진하는 은행들이 틈새시장의 패권을 노린다.

경기은행을 인수한 한미은행은 당분간 내실위주 경영에 충실하겠다는 입장
이다.

장기신용은행도 당분간 외국금융기관과 제휴하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주택 국민은행도 외자유치가 당면 목표다.

평화은행은 살아남아 "노동자은행"의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한국 상황에서 "합병의 효용"이 검증되지 않는한 쉽사리 다른 은행과
"동침"하는 길을 택하진 않을 것이라고 이들 은행 경영진들은 강조한다.

지방은행들은 살아남을 경우 자연스럽게 지역은행이 된다.

지방은행끼리 합병할 경우에도 지역은행의 틀은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다만 이들중 몇 곳이나 살아남을 지가 미지수다.

국제업무를 포기한 일부 지방은행은 업무적으로 대형시중은행과 제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조정은 "겉" 못지 않게 "속"을 바꾸는 과정이다.

핵심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추방이다.

금감위 윤원배 부위원장은 "금융개혁은 모럴해저드를 제거해 자기책임의
원칙을 확고히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과도기적인 구조조정기가 끝나면 퇴출은 철저히 시장원리에 의해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당국도 건전성 감독 등으로 행동반경을 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가장 큰 변화는 숫자가 준다는 것이다.

26개 은행중 이미 5개은행은 법적으로만 존재한다.

여기에 상업 한일이 한 몸이 되면 다시 1개가 준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은행 수는 절반이상으로 감소될 수 있다.

더욱이 은행이 다른 업종의 금융기관까지 흡수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강원은행은 현대종합금융과 합병절차를 밟고 있다.

매킨지는 97년말 26개 일반은행, 33개 증권사, 33개 생명보험사, 17개
손해보험사, 16개 종합금융사, 3개 여신전문기관, 기타 저축기관이 2003년
이후 3개 지주회사, 5개 외국사, 2개 풀라인업, 5개 싱글라인업 등 15개
대형사와 틈새시장형 금융기관 몇개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 2000년대 은행산업 예상도 (*는 은행 희망사항) ]

< 현재 >

<>.7대 시중은행 :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외환 신한
<>.후발은행 : 한미 하나 보람 평화
<>.민영화 국책및 특수은행 : 국민 주택 장기신용
<>.지방은행 : 강원 충북 대구 경남 부산 전북 광주 제주

================= >
전제조건 = 생존

< 2000년대 >

<>.선도은행 : * 상업+한일(합병선언)+외자
* 조흥+?(합병추진)+외자
* 외환+?(합병추진)+외자
* 하나+보람(합병추진)+?+외자
. 신한+?+외자
. 제일/서울 인수은행

<>.틈새시장은행 : * 국민(소매금융전문)
* 주택(주택금융전문)
. 한미
* 장기신용은행(기업/소매금융)
* 평화(근로자전문은행)

<>.지역은행 : * 충북 대구 경남 부산 전북 광주 제주
. 강원+현대종금

< 허귀식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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