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건국 50주년이 다음달이라는데 만나는 이 마다 걱정이 태산같다.

나라꼴, 특히 경제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1~2년내에 지금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다수는 짧아야 3년, 길면 5~10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경제의 부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또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구조적 모순을 짧은 기간내에 제거하고
고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청난 부실을 안고 있다는 대형 시중은행이나 증권.보험.투신사등의
구조조정이 과연 잘 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산업부문도 그렇다.

협조융자 빅딜(Big Deal) 워크 아웃(Work Out)등으로 기업구조조정정책
이 혼미스럽고 높은 부채비율에 가위눌린 기업들은 고금리와 신용경색으로
사색이 돼있다.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부도사태와 실업 급증으로 경제는 물론
사회안정까지 위협받고 있다.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대가를 요구하고 고통을 수반한다.

구조조정을 미숙하게 처리하면 추가적인 비용과 고통을 치러야 한다.

처음 해보는 국가적 위기관리라 어느정도의 시행착오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정도가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정부의 능력에 회의를 품게되고 불신이 싹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이 어찌될지 몰라 소비를 늘릴 수 없고,
경제가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기업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믿음을 주지 못하는 구조조정은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자신감을 크게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정부는 다음 사항을 염두에 두고 구조조정을 해나갔으면 한다.

첫째 무엇보다 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이끄는대로 따르면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에 대한 철저한 준비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

금융기관 기업 공기업 및 정부기관의 구조조정을 일관되게 꿰뚫는 원칙과
목표를 뚜렷이 하고 이에 따라 투명하고 공평하게 강력히 밀고 나가야 한다.

이는 한마디로 구조조정이 시장원리에 입각한 것이자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이 없어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해도 정부는 시장이 내릴 바로
그 결정을 찾아 대신 내리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구조조정은 반드시 해내야 할 시대적 과제지만 분수에 맞게 해야
한다.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낙 이곳 저곳이 중병에 걸린 우리 경제이니 만큼 수혈도 하고 마취제도
사용하면서 단계적으로 수술해나가야 한다.

신용도 공급하고 희망도 심어주면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의 기술, 환자의 체력을 감안하지않고 모든것을 한꺼번에 수술해
환자를 죽인다거나, 살린다 해도 어느 부위를 불구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셋째 구조조정의 성공을 위해서도 이제는 경기부양을 검토해야 한다.

지금은 외환위기보다 내수붕괴가 더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내수부진 신용경색으로 기업이 다 죽은 후에 구조조정이 무슨 소용이며,
물가안정이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기업이 없는데 어디에 가서 직장을 구할 것인가.

어느정도의 인플레를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통화공급의 확대와 재정적자를
통해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넷째 구조조정을 단기간에 말끔히 끝낼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단기간에 끝내기에는 우리의 병이 너무 깊고 복합적이다.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 겪어야 할 극심한 고통을 분담하고 감내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도 부족하다.

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금융기관 및 기업의 부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우리들의 윤리와 도덕수준, 가치관과 관행,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정리해고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갈등을 고려해 보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시간 일정을 좀 더 길게 잡고 완급과 경중에 따라 구조조정의
우선 순위를 매겨 추진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이를 강력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이 되지않을까 싶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과 고통의 이자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이를
감수할 각오를 해야함은 물론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