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의장단도 없고 회의도 열수없는 의정공백상태에서
17일 제50주년 제헌절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렀건만 생일잔칫상에서
까지도 추태를 멈추지 않는 오늘의 국회 모습은 제헌 반세기의 의미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하다.

17일 국회의사당에서 거행될 제헌절 기념식은 15대 국회의 일그러진
현주소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자리가 될듯싶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의장없는 기념식을 치르게 된데다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여당의 원구성 지연작전에 대한 항의 표시로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에 검은 리본까지 착용하기로 했다고 하니 국회의 자기모독도
이쯤되면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사실 새정부 출범이후 국회는 하루도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종필 총리서리 인준문제를 놓고 다투다가 회기를 넘기더니 지난 5월로
의장단 임기가 끝났음에도 아직껏 원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장 자리를 서로 자기당이 차지하겠다는 것이 싸움의 가장 큰 이유다.

이 지루한 싸움으로 멍드는 것은 국가경제다.

지금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무려 2백65건에 달한다.

기업과 은행 등의 구조조정을 위해 당장 개정하거나 제정해야할 법안만도
30여개에 이른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편성한 1차추경예산안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상태다.

헌정 반세기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 헌법의 근본 이념인 법치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은 국회가 입법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국회의원
들이 불법 위법행위를 일삼고 있는 정치현실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제헌절 아침에 새삼스럽게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선진 국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할 일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우리의 국회는 무엇보다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의
생산적인 국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현재 2백99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절반정도로 줄이고 활동범위도 국회고유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대폭 제한할 필요가 있다.

또 국회의원들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유권자인 국민이 이들을 "퇴출"
시킬 수 있는 의원소환제도를 도입하는 등 정치권력의 통제장치를 헌법에
설치해야 한다.

아울러 의원들이 소신에 따라 입장을 표명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의정실명제를 도입하는 일도 시급하다.

지금까지 입법부의 수장이라기보다는 특정정파의 대변자 역할을 해온
국회의장에게 당적을 갖지 못하도록 한다면 의장직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도
줄어들고 공정한 의사진행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개혁작업을 지금처럼 여야 정치권에만 맡겨둔다면 부지하세월이
될게 뻔하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한 강력한 범국민운동이라도 전개되지 않고서는
정치권의 민심불감증을 치유할 수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7일자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