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와 기업간 시각차이는 뚜렷했다.

16일 하얏트호텔에서 한국능률협회가 주최한 3백회 기념 "최고경영자조찬회"
에서 정덕구 재경부차관은 "기업인들이 기존의 성장가설에서 벗어나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을 무릅쓰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사장은 "다 죽은 기업은 살리고 용하게
버티고 있는 기업을 흔드는게 구조조정이냐"며 "정부가 경영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프로그램을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구조조정 과제와 대응전략"을 주제로 한 이날 토론회에서 박승
중앙대교수는 실업을 해결하고 기업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플레이션 정책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참석자들이 주장한 핵심내용을 요약한다.

-----------------------------------------------------------------------

* 정덕구 재경부차관 =그동안 우리는 서너가지 가설에 사로잡혀 있었다.

먼저 총량극대화를 위한 투입산출의 가설과 규모에 관계없이 똑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동일속도가설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금융종속가설과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가설도 우리를 지배해 왔다.

개방화시대에 이런 가설들이 깨지면서 IMF(국제통화기금)시대를 맞게 됐다.

이 시점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한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잘못된 것은 서둘러 바로 잡아야 한다.

빚을 얻어 사세를 키우는 차입경영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신용이 경색되면 기업이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만큼 금융구조조정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경영인들은 자식이 똑똑하지 못하면 회사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

물론 기업구조조정은 시장원리에 바탕을 둬야 한다.

55개 기업의 퇴출과 워크아웃플랜 등이 시장원리에 맞느냐는 논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스스로 안할 경우 마지막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잘못된 부문에 자금이 흘러가는 현상을 막아 감량경영을 유도해야 할
것으로 본다.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경제는 살리겠지만 기업구조조정이 단시일내
이뤄지도록 정책을 펼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개혁은 외부의 충격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업들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함으로써 자율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사장 =국제경제환경에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기업인들이 져야 한다.

그러나 모든게 기업인 책임만은 아니다.

우리가 IMF 신세를 지게된 것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신용이 붕괴되고
대내외적으로 정부의 신뢰성이 떨어진데 따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기업구조조정만 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구조조정은 결과를 중시해야 한다.

구조조정과정에서 산업기반이 다 붕괴되면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구조조정은 부실한 부문을 손질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최근 퇴출기업으로 55개 기업이 발표됐다.

그런데 누가 심의해 결정했느냐가 불분명하다.

사업구조조정차원에서 얘기되고 있는 빅딜도 정부가 나서야 하는지 의문
이다.

잘라내고 축소하는게 진정한 기업구조조정은 아니다.

산업구조가 손상되면 악순환이 반복될 따름이다.

자칫 모든 기업이 한계기업으로 전락하고 세금이 줄면서 재정이 어렵게
된다.

실업자가 늘고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문제는 더 커진다.

자산 및 금융시장 등 여건은 형성돼 있지 않은데 무턱대고 부채비율만
낮추라면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자산매각 사업축소가 불가피하다.

전체 경제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부는 구조조정의 장애물을 없앤후 개혁실적을 따져야 한다.

개별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구조조정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 박승 중앙대교수 =외환위기를 한고비 넘겼는데 경제가 풀릴 기미가 없다.

근본 원인은 우리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금융기관부실채권에 있다.

우리경제능력으로 1백50조원의 부실채권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더욱이 정부의 대처능력은 예전보다 훨씬 줄었다.

짐은 훨씬 늘었는데 말이다.

지금 당장 8.3 사채동결조치를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플레이션 정책을 펼 것을 권한다.

현상황에서 돈을 풀어도 물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은 없다.

설혹 올라도 15%정도의 물가상승률은 감내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을 받아들이면 실질임금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고비용구조를 해소할 수 있고 실업사태도 어느정도 막을 수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은 기업부채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물가가 오르면 채무자가 덕보게 마련이다.

외국자본에 의존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면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외자도입은 적극 추진하되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한국은행에서 돈을 찍어내 금융개혁에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의 흑자도산을 막고 생산자금이 원활하게 돌게 된다.

정책적인 인플레이션은 비용상승(cost push)에 따른 악성 인플레이션과
구별돼야 한다.

* 윤병철 하나은행회장 =그동안 금융이 압축성장을 지원하는 정책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다양한 금융수요에 따라 다기화된 금융구조를 갖게 된것도 이때문이다.

부실한 금융기관은 합병했고 특융을 지원해 부실을 덮어 왔다.

금융과 기업은 표리의 관계에 있다.

기업에도 부실이 만연하다.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이어져 신용이 경색되면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구조조정을 하는데 있어 방법이 필요하다.

정부는 제도와 틀을 만들고 금융기관은 그 안에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책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조정과정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을 사전에 막는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혼선을 막을수 있다.

기업들도 전략적 위치를 정하고 기업문화와 가치체계 등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특히 정부는 BIS(국제결제은행)의 자기자본비율만을 잣대로 은행을 몰아
부치면 거기에 맞춰 자금을 운영하게 된다.

당연히 기업쪽에 자금이 흘러가지 않고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으로
한국은행에 돈이 몰리게 마련이다.

자산건전성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감독을 강화하면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 정리=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