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사람을 평가할 때 통이 얼마나 큰가를 척도로 삼는 경우가
많다.

밥값 술값을 잘내면 통크고 좋은 인물이요, 그렇지 않으면 인색하고 쩨쩨한
인간으로 불린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직급별 월급차이가 크지 않고 과장 부장이 되면 생활비가
훨씬 늘어나는데도 계산은 으레 이들 몫인 것도 이때문이다.

그러나 IMF이후 급여와 상여금및 각종 수당의 삭감으로 너나 할것 없이
주머니가 얇아지자 친구끼리는 물론 선후배끼리도 비용을 분담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20대초반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더치페이가 직장인 사이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

올봄 한 건설업체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78%가
더치페이에 찬성한데 이어 최근 한 증권사에서는 사내 삼강오륜에
"더치페이의 생활화"를 포함시켰다 한다.

프랑스 서쪽 부르나뉴반도에 사는 부르퉁족과 함께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대표적 민족으로 꼽혀온 한국인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긴 셈이다.

아직까지 참석자 전원이 그자리에서 똑같이 나눠내기보다는 누군가 먼저
계산하고 다음날 나머지 사람들이 갹출하거나 온라인으로 입금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체면상 아랫사람과 똑같이 내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상사를 위해 직급별로
조금씩 더 내거나 월급날 일정액을 갹출해 모아뒀다 쓰는 방식도 인기라고
한다.

자린고비가 근검절약이 아닌 인색과 구차함의 대명사로 여겨질 때부터
우리의 고난은 예견됐던 건지 모른다.

판공비나 눈먼돈일 것이라는 생각때문에 선배나 상사의 계산을 은연중
당연시해온 건 아니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1852년 미국 동부사람들의 이주를 위해 시애틀을 사들일 때 땅주인 시애틀
추장이 정부에 보낸 편지속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한다.

"이 자연을 잘 지키세요...

누리는 삶의 끝은 살아남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랍니다"

우리는 지금 누리는 삶의 끝에 만난 IMF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살아남자면 종래의 사고와 관행, 모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치 페이의 생활화도 그중의 하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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