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신문의 효시로 꼽히는 한성순보가 순한문으로 출발한 때문인지 우리나라
신문들의 많은 한자사용은 상당기간 당연한 것이었다.

광복후 정부는 한글학회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글전용 교과서로 교육을
시작했다.

그런데 1949년11월5일 25명의 국회의원들이 "교과서에 한자사용 건의안"을
발의한다.

국민학교 졸업생들이 신문 잡지를 읽을 수 없으니,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간이한자를 쓰고, 신문 잡지에서는 한자를 제한하여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당시 국민학교 교과서는 이극로가 편찬한 것이었다.

그는 얼마후 월북해 "한글 전용주의는 이극로주의다"는 말까지 나왔으며
국회의 요구로 국민학생에게 가르칠 "교육한자" 1천자가 선정됐다.

이후 한글학회의 한자섞어쓰기에 대한 반대투쟁과 신문을 상대한 한글전용
권장은 지속됐다.

1964년 학회는 "한국의 나랏말은 한글이다"고 시작하는 7가지 내용을 담은
한글전용에 관한 주장을 밝혔다.

그중에는 "우리나라의 신문 잡지는 다 한글만 쓰기로 하여야 한다"는 것도
있다.

요즈음 신문 독자들 중에 한자때문에 애를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글학회의 그간의 노력과 사회변화 등 어느요인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신문 잡지의 한자사용은 격세지감 그것이다.

한글전용이 "고지점령"을 바라보고 있는 오늘날 한자때문에 고통받는
집단이 생겼다.

전북 전주시 외곽에서 검문하던 전경이 검문대상자의 이름중 설자를 몰라
"탱크처럼 생긴 한자"를 뭐라고 읽느냐고 전화로 물었다 한다.

이 일이 있은후 전북경찰청은 전경들에게 주 두시간씩 상용한자를 교육한다
는 것이다.

한자는 어렵다.

이름에 쓰이는 한자는 희귀한 것이 꽤나 된다.

중국은 백화문자를 개발해 어려움을 얼마간 극복했다.

그래서인지 교육학자 애위(애윙)는 "한 나라의 문자는 그 나라 국민의
공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자는 알파벳과 유사한 "외래공구"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자는 우리에게 "공구"이상이다.

우리의 역사이고 문화이고 생활의 일부다.

한자문맹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지 않을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