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실패사례에서 성공의 밑거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패원인을 찾아내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절반의 성공은 확보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자본 창업에 손을 댔다가 쓴잔을 마신 사람들의 얘기는
시사하는 바 크다.

이들의 생생한 실패담과 함께 그 원인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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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대동여지도의 손모씨

손씨는 지난 7년 동안 무려 아홉번의 창업과 아홉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에게 첫번째 좌절을 맛보게 한 것은 지난 91년 문을 연 혼수전문점.

원스톱 혼수장만을 캐치프레이즈로 각종 혼수품을 한곳에 모았다.

그러나 이같은 판매방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응도가 낮아 결국 1년만에
간판을 내렸다.

그는 이에 굴복하지않고 지난 93년 수집상들이 수집해온 고철을 고물상에
넘기는 고철수집및 판매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지속적인 거래선을 확보하지 못한채 망했다.

아무리 사소한 업종이라도 유통망이 탄탄한지를 살펴야하는 교훈을 남겼다.

두번의 잇따른 실패에도 손씨의 창업욕은 꺾이지 않았다.

94년을 전후해 일기 시작한 건강식품붐에 편승, 지방특산물 판매대행업에
손을 댔다.

지리산에서 재배된 고추와 마늘을 서울에 판매한데 이어 야생 녹차도
팔았다.

이 두가지 사업은 모두 운송비용을 감당하지못해 중도 하차했다.

그는 사전오기의 투혼을 발휘, 다섯번째로 시민단체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단체 회원들의 사업마인드가 부족, 혼자 애써보다 곧 바로 그만뒀다.

95년 봄 펜티엄급 컴퓨터 보급붐을 타고 컴퓨터 대리점을 열었다.

그러나 본사의 부도로 같이 망했다.

이를 계기로 손씨는 대리점을 할때는 본사가 건실한지를 잘 파악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6년에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제조,판매하는 사업을 벌였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에 대한 여론이 조성됐지만 각가정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던게 실패원인이 됐다.

3개월만에 사업을 정리하면서 비전이 없으면 하루 빨리 손을 터는 것이
좋다는 진리를 체득했다.

같은 해 시작한 결혼대행서비스도 비슷한 업종의 난립으로 경쟁이
심화되면서 원가도 뽑기 어렵게돼 아예 포기했다.

손씨의 아홉번째 도전은 판촉물 제조 납품업.

모 대기업과 납품계약이 체결되기전 중간에 끼여든 경쟁사가 인맥을 동원,
납품권을 따내는 바람에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현재 장사는 아예 포기하고 그동안의 사업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밑천으로 창업컨설팅활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것이 그의
컨설팅 내용이다.

<> 피자전문점 조모씨

조씨는 서울 상계동에 1억원을 들여 피자전문점을 냈다가 1년6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총 투자비중 무려 6천만원이 빚인게 문제였다.

장사는 그런대로 잘 됐으나 매달 80만원이 이자로 꼬박꼬박 나가는데다
1년이 지나면서 부채상환압력에 시달렸다.

결국 몇달을 끌다가 손해를 감수하고 가게를 처분하고 말았다.

<> CD대여점 최모씨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CD대여점을 시작한 최씨는 창업전
회사에서 익힌 기초수준의 컴퓨터 실력을 믿었다가 낭패를 봤다.

CD가 작동되지않을 경우 수리해줄 정도는 돼야하는데 그렇지못했던 것이
실패원인이다.

<> 국수전문점 박모씨

박씨는 3년전 주위사람의 권유로 퇴직금 9천2백만원을 투자해 서울 등촌동에
국수전문점을 열었다.

버스정류장 부근 건물 2층에 20평공간을 얻어 장사를 시작했다.

점포입지가 대로변인데다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있어 성공을
낙관했다.

그러나 결국 1년도 버티지못하고 두손 들었다.

실패의 가장 결정적 원인은 점포가 1층이 아니라 2층에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가파랐다는 점이다.

외식업은 특성상 지나가다가 부담없이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