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천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국민들은 금융개혁, 재벌을 포함한 기업 구조조정과 함께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기업민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목해 왔다.

이미 지난 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신경제 5개년 계획" 구도하의
거창한 민영화계획이 용두사미로 흐지부지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은 혹시라도 이번의 공기업 개혁이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실무진의 민영화계획 보고를 접하면서 "혁명적(?)"수준의
발상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공기업민영화 추진을 직접
점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번의 민영화계획이 과거의 청사진 제시
수준처럼 호락호락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사전보고 과정에서 몇몇 핵심 공기업의 민영화가
추가되었고 민영화 시기가 당초보다 앞당겨졌다는 사실은 이번이야말로
공기업 개혁을 관련 행정부처 등 관료기구에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공기업민영화 과제는 시장경제의 기조확산과 대외개방의
물결속에서 이미 90년대 전반에 그 밑그림이 그려진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영화를 중심으로 한 공기업 개혁은 그 구상과 계획보다
실천과 세부추진이 개혁 성공의 관건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탓인지, 기획예산위원회는 5개 공기업과 그
자회사들을 즉각 매각하고 나머지 공기업의 경우도 구체적 시간계획을
제시하고 있어 이제야말로 논의만 무성했던 공기업민영화가 본 궤도에 진입한
셈이다.

이번 공기업민영화 방안의 두드러진 특징은 정부보유주식의 과감한 해외매각
개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논자들은 한국경제가 전반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속에서
외국자본의 헐값으로 넘김으로써 경제주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충정어린 비판에도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보다 주도면밀한 민영화방안을 짜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개방화.정보화.세계화가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경영권의
국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설령 외국자본이 우리의 소중한 공기업의 지분을 확보해서 경영권을
행사한다 할지라도, 그 이면에 외국자본의 참여가 가져오는 국민경제적
이점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Japan IBM, Toyota USA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외국자본의 한국기업
진출은 우리의 대응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해당기업의 현지화(즉, 한국화)를
통하여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긴요한 것은 정부보유주식의 매각을 통한 외자유치와
재정수입 확보뿐 아니라, 우리 내부의 역량만으로는 변혁의 투입이 힘겨운
선진국의 길들여진 경쟁체질과 경영의 투명성 등 시장의 생동성(vitality)을
한국경제에 접목시켜야 하는 고통스러운 선택이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당장은 우리의 자존심이 손상될지 몰라도 한국경제의
세계화를 촉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경제위기 극복과 경쟁력의 토대 구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

다만 정부가 스스로 설정한 민영화 시간계획이나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강박분위기에 쏠려 민영화 추진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요 쟁점이나
정책점검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지체하지 않되 주도면밀함을 잃지 않는" 성숙된 추진노력이야말로
민영화에 부정적인 일부 식자들의 우려를 반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민영화의 집행방식을 마련함에 있어서 특정 선진국의 성공사례에
집착한 나머지 성공이 토양과 여건을 신중히 고려하지 않은 채, 공기업개혁을
일반적 벤치마킹으로 수용하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한다.

비록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외국의 사례를 배워야 하더라도 한국경제의
비전과 새로운 역량에 부합하는 민영화의 틀을 창조함으로써, 수년내로
우리의 민영화 사례가 여러나라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제도
경쟁력을 일구어내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