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지사개설 요원으로 홍콩에 부임한 J기업의 김모(38)과장.

지난주 김과장은 본사로부터 느닷없이 귀국명령을 받고 부랴부랴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홍콩지사 폐쇄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지사가 수행하는 비즈니스 규모에 비해 운영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게 이유였다.

요즘 홍콩에서는 김과장처럼 어느날 갑자기 귀국 보따리를 싸는 한국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주재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본사에서 앞다투어 현지 지사를 축소하거나 아예 철수하고 있어서다.

금융기관의 경우 작년말 현재 64개 기관이 홍콩에 나가 있었다.

그러나 올들어서는 이중 22개가 철수 또는 규모축소를 추진중이다.

맨먼저 조흥리스 중부리스 등 제2금융권들이 우르르 빠져나갔고 뒤이어
은행들도 주재원을 줄여나가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금융기관중 가장 규모가 큰 외환은행도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직원들의 후임을 보충하지 않고 있다.

무역상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종합상사및 중견무역상사 25개 가운데 9개가 지사를 폐쇄했고 7개는 규모를
줄였다.

(주)쌍용은 아예 문을 닫았고 LG상사도 반도체와 전자 영업파트 직원들을
불러들였다.

또 그룹이 부도가 난 해태상사 역시 조만간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됐고
동국무역 등도 지사규모를 감축하고 있는 중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대우 쌍용 삼성이 나가 있었으나 올들어 수주업무만 상사에
인계하고 모두 들어와 버렸다.

대한항공 역시 탑승객 감소에 따라 현지 직원을 20% 이상 줄였다.

이렇게 홍콩을 떠난 한국기업의 주재원들이 올들어서만 8백여명으로
추산된다(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박현진 과장).

작년말 현재 주재원 8천명의 10%에 해당되는 수치다.

이 바람에 현지에 설립된 한국인 국제학교도 찬바람을 맞고 있다.

원래 2개 학급으로 설립된 이 학교는 최근 학생수가 격감해 1개반으로
축소됐다.

"이대로 가다가는 재정난 때문에라도 폐교해야 할 형편"이라는게 학교
관계자의 근심어린 설명이다.

이같은 한국기업들의 "엑소더스"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환란"의 영향이다.

홍콩경제가 가라앉으면서 한국과의 비즈니스도 크게 위축된 것이다.

올 1~5월중 한국이 홍콩에 수출한 금액은 4백32억달러로 작년동기에 비해
9.1%나 감소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한국의 대홍콩 수출은 그동안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해왔다.

특히 작년에는 무역흑자가 1백8억달러를 기록, 사상처음 1백억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환란이라는 삭풍이 하루아침에 수출을 감소세로 돌려놓은 것이다.

당초 한국기업들은 주권반환 이후의 홍콩 비즈니스에 대해 "기대반
우려반"으로 전망했었다.

기대는 주권반환이 몰고올 건설분야 등의 특수에 대한 것이었다.

우려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따른 비즈니스 환경 악화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이 전망은 모두 빗나갔다.

특수도 없었고 중국의 영향력으로 비즈니스 환경이 나빠졌다는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환란"이라는 예기치 못한 복병이 덮쳐 비즈니스를 위축시켰다.

이는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홍콩무역관이 현지 진출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이 조사에서 기업들은 경제자유도라든지 행정서비스 같은 기본적인
비즈니스 환경은 주권반환전과 마찬가지로 매우 만족스럽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영업환경에 대해선 65%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는 물론 홍콩의 경기침체 때문이다.

무공 홍콩무역관의 조영복 관장은 "경기회복엔 최소한 2~3년은 걸릴
것"이라는 둥젠화 행정장관의 전망을 들어 "한국과 홍콩간 비즈니스가
예전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에도 그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