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향항회귀조국일년"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 청사에 걸려있는 대형 플래카드다.

홍콩의 중국반환 1년을 축하하는 내용.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온통 이 플래카드와 오성홍기로 도배질돼
있다.

도시 전체가 축제를 맞은 것처럼 보인다.

돌아보면 그것은 축제이기도 했다.

홍콩이 반환되면서 주가가 치솟고 부동산값도 뛰었었다.

정치는 통합되지만 시장경제는 유지한다는 "일국양제"에 대한 걱정도
기우로 그쳤다.

그러나 축제는 1년전의 일이었다.

깃발은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지만 잔치는 이미 끝났다.

"대감판매(바겐세일)"라는 문구가 상점마다에 내걸린 지도 제법 됐다.

세계 유명 브랜드만 취급하는 센트럴(중환)의 랜드마크나 코즈웨이
베이등 고급상가조차 세일을 알리는 대문짝만한 안내문이 빼곡히 나붙었다.

매장들은 여전히 잘 단장되어 있었지만 손님이 줄어 차라리 썰렁했다.

썰렁한 것은 공항부터가 그랬다.

일본 대만 한국인들로 발디딜 틈도 없었던 공항이었다.

아시아인들은 이제 차례가 되면 자신의 여권을 조용히 내밀고 있을
뿐이다.

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홍콩경제는 한마디로 "추락"이었다.

올 1.4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2%.

13년만의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인 4.2%를 기록했다.

주가는 최고조에 달했던 작년 8월(항생지수 16,673)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텅빈 사무실이 늘어나면서 부동산값도 폭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작년에 비해 평균 30%이상 빠졌다.

요즘은 1주일 단위로 값이 달라질 정도"라고 부동산업을 한다는
창 훼(36)씨는 말했다.

금리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은행간 금리는 19%(1개월물 기준)까지
치솟았다.

"기업들은 운용자금이 없어 빈사상태"라고 앤드루 창(증권브로커)은
말했다.

세계적 금융그룹이었던 페레그린의 파산은 홍콩경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뒤이어 무디스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등 국제 신용 평가사들은 홍콩
신용등급을 잇달아 떨어뜨리고 있다.

주민들의 생활도 말이 아니었다.

발랄한 홍콩 사람들의 얼굴은 점차 본토인들의 무거운 얼굴을 닮아
가고 있었다.

아시아위기 여파로 관광객이 40%이상 줄어들면서 식당이나 쇼핑가엔
찬바람이 일고 있다.

주가와 부동산가격 폭락으로 주민들의 자산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가뜩이나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본토인들까지 넘어와
고용사정은 최악이다.

택시기사인 덩 칭리(41)씨는 "홍콩 이발사의 절반가량은 본토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3D업종의 경우는 본토인들이 사실상 점령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홍콩 경제가 어려워진 게 중국반환 때문은 아니다.

중국이 잘못 간여해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일국양제"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게 덩 광 야우 홍콩정부
경제분석국장의 설명이다.

홍콩 경제침체의 원인은 홍콩 자신이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던
아시아위기에서 비롯됐다.

"아시아 위기로 외국자본이 아시아에서 집단 탈출하면서 그렇지않아도
부풀어 있던 홍콩의 버블을 붕괴시킨 탓"이란 게 앤디 쉬 모건스탠리
아시아담당 부총재의 설명이었다.

작년 10월말 주가가 폭락하자 홍콩당국은 콜금리를 연3백%까지 끌어
올렸었다.

환투기꾼들의 공격을 막고 미국달러와 홍콩달러를 연계시킨 페그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인상된 금리는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을 흔들었다.

금리를 기습인상해 투기세력은 물리쳤지만 이를 기화로 외국자본들은
보따리를 꾸렸다.

여기에다 아시아 인근 국가들의 경제붕괴로 관광과 무역수입은 급감했다.

문제는 쉽사리 경제가 회복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은 없다.

최소한 3년은 이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앤디 쉬 부총재)이란 비관론이
대세다.

홍콩 정부가 동원할수 있는 정책 수단도 제한돼 있다.

당장 취할 수 있는 대책이라면 고정환율제(페그 시스템)를 풀 것이냐
말 것이냐는 정도다.

그러나 페그제를 잘못 만졌다간 아시아위기가 재폭발할 것도 분명하다.

홍콩정부가 이번 주권회귀 1주년 기념행사 비용으로 잡은 돈은
1천6백억홍콩달러다.

작년 주권회귀 행사때 든 비용의 5%에 불과하다.

축제땐 의례 동원되는 불꽃놀이도 하지 않기로 했다.

1백56년 영국식민지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 시작한 "일국양제 1년"의
결과는 이처럼 초라했다.

홍콩이 이 위기를 넘기고 "아시아의 진주"라는 말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알수 없다.

홍콩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올해는 유달리 후텁지근했다.

< 홍콩=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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