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센터(소장 공병호)는 25일 미국 조지워싱턴대 박윤식교수를 초청,
"해외에서 본 한국 경제위기 전망과 해법"을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에서 박 교수는 "한국이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유례없는 악조건의
차관을 받았다"며 "정부는 이를 국민에게 정확히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편집자 >

=======================================================================

작년 11월 21일 한국정부는 오랫동안 외환위기를 부정하고 미루어 오다가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조 요청을 하게 됐다.

이에 앞서 갓 임명된 새 경제부총리가 IMF 구조요청을 회피할 마지막
카드로 일본을 방문해 구걸외교 하기도 했다.

결국 빈손으로 김포공항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미국 등 선진국들과 IMF 등 국제기구로부터 미움만 사게 됐다.

나중에 IMF와 세계은행 차관을 들여올 때 한국은 가장 고금리의 악조건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IMF 차관을 들여오면서 우리나라는 IMF의 통상적인 이자율에다 매년 3%의
마진을 더 부담하게 됐다.

이 마진은 반 년마다 0.5%씩 상승해 최고 5%까지 올라가도록 돼 있다.

이런 조건은 IMF 5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은행에서 30억달러를 들여 올 때도 한국은 손해를 봤다.

통상적 세계은행 대출금리인 리보(LIBOR)에 0.25%의 실질마진을 더하는
것보다 무려 4배나 되는 1% 마진을 부담했다.

뿐만 아니라 수수료(service charge) 명목으로 2%인 6천만달러를 미리
떼었다.

세계은행은 앞으로 2년간 2차 수수료로 1.5%인 4천5백만달러를 받게 돼있다.

세계은행 50여년 역사상 후진국 차관자들로부터 통상적 이자 외에 수수료를
물린 적이 없었다.

정부의 실책과 국제금융에 대한 무지로 유례없는 악조건과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정부는 마땅히 국민들에게 해명하고 사과했어야 했다.

이럴 바에야 80년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처럼 갚을 돈이 없다고
버티는게 나았었다.

이들 나라는 수개월을 끌어 결국 차관이자를 낮췄다.

BIS(국제결제은행)비율 하락을 우려한 선진은행들이 이들 나라에 진 것이다.

우리도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협상했으면 외국
금융기관들이 IMF에 가혹한 구조조정을 하지 말라고 부탁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업과 상업은행들이 진 빚은 정부가 지급보증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채권자인 외국은행들에게도 책임을 지워야 한다.

IMF는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등 세 나라를 일방적으로 도와준 것이 절대
아니다.

선진국들이 자국 국익 보호차원에서 구제금융을 주선한 것으로 봐야 한다.

만약 한국 등이 외채지불유예(debt moratorium)를 선포했으면 이 외환위기가
중남미와 동구라파 국가들에게까지 확대됐을 것이다.

이들 국가에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빌려주며 장사해 온 선진국 은행들이
크게 휘청거릴 수 밖에 없었다.

97년 현재 서방선진국 은행들이 전 세계 후진국들에게 빌려주고 있는
액수는 우리나라 금년 GDP의 3배가 넘는 1천조달러 이상인 것으로 국제경제
은행(BIS)은 계산하고 있다.

IMF는 원래 지난44년 브레튼우즈 협약에 의해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단기성 국제수지 차관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제기구이다.

73년 고정환율제도가 붕괴되면서 할 일이 없어졌었다.

82년 중남미 외채위기가 발발하자 중남미 채무자들과 함께 이 외채위기의
공동책임자 격이었던 선진국 은행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IMF는 이 중남미
외채위기 해결업무를 떠맡게 됐다.

이후 IMF는 후진국 외채위기 해결사로서 국제금융사회에서 각광받게 되었다.

문제는 IMF가 이번 아시아 경제위기에서도 중남미에서와 똑같은 정책을
아시아 국가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경제위기는 증상(외환위기)은 같으나 병인은 판이하게 다르다.

80년대의 중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이번 환란위기에 처한 아시아 국가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은 과도한 재정적자에 시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재정흑자를 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물가도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안정돼 있었다.

국제수지 적자도 GDP의 1~2%에 머물러 별로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이번 경제위기는 물가나 정부재정 국제수지 같은 거시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지난 30여년동안의 정부 주도형 압축 성장기에 누적된 구조적 모순으로
경제 각 분야에 스며든 고비용 저효율 환경에서 유래한 미시경제적 문제가
원인이다.

<>과도한 정부규제 <>관치금융 <>사회각분야에 만연된 부정부패
<>전근대적인 기업의 지배구조와 부채경영 <>외형위주에 기인한 과투자와
오투자 등으로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그 내부가 썩어들어 갔었다.

그러므로 환율안정과 고금리를 주축으로 한 IMF 차관조건은 우리나라에는
전혀 적합치 않다.

워싱턴의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조사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위기 극복은 평균 2.5년~3년이 걸린다고 한다.

해외 민간 전문가들은 아시아 경제위기가 최소 2~3년에서 5년정도까지는
계속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은 4조5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 한국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전체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실질경제성장률이 작년에 5.5%였는데도 이렇게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다.

금년에는 경제가 큰 마이너스 성장률이 예상되고, 금리도 IMF 조건 덕분에
터무니없이 올라있어 우리나라 기업들의 적자가 눈덩이 같이 불어날 것은
불문가지다.

실질 경제성장률이 6.9%였던 96년에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회사들이
회계상으로는 도합 2조6천억원의 순익을 낸 것으로 보도됐지만 경제부가가치
(EVA: Economic Value Added)로 따져볼 때 마이너스 3조원의 손해본 장사를
했다는 것으로 계산됐다.

EVA가 마이너스면 회사는 차라리 사업을 정리하고 그 자금을 국채 등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주주들을 위해 더 낫다.

우리나라 GDP의 20%가 넘는 1백조원에 가까운 부실채권을 갖고 있는
금융기관들을 하루속히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경색으로 자금융통이 안돼 기업들은 계속되는 흑자부도와
연쇄파산을 피하기 어렵다.

대량 실업,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대표되는 자산 디플레이션,
소비와 투자활동의 급격한 감소로 GDP가 끝없이 하락하는 등 6.25전쟁에
버금가는 복합적 경제공황을 당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민족적 대재앙을 하루빨리 극복하자면, 공무원 감원과
정부기구 축소를 단행하여 고비용 저효율로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저하
시키는 온갖 정부규제를 혁파하고 진정한 시장경제를 완성시켜야 한다.

또 취약한 금융기관을 과감히 통폐합시켜 철저한 금융구조조정을 성취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은 이런 여건이 조성돼면 자연히 이뤄질 것이다.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을 너무 서두르다보니 외국인들은 값이 더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정부가 바겐세일이 아니라 파이어 세일(fire sale)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정리=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