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간문춘 최근호(6월18일자)는 "한국경제가 죽어도 일본은 괜찮은
18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IMF체제로 들어선 한국 경제에 대한 각분야
전문가들의 평론을 실었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 구조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한국의 위기가 오히려 일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석이 지나쳐 읽기에 거북한 내용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경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이 어떤 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대로 옮겨 싣는다.

< 정리 도쿄 = 홍찬선 기자 i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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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는 지난해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었다.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IBRD),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총력적인
지원으로 국가부도는 벗어났다.

그러나...

"서울은 실업자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서울역 계단과 통로에는 한창 일할 나이인 40~50대가 무더기로
앉아있다.

가족 전체가 하염없이 앉아 있기도 한다.

마치 고베지진 후의 광경을 보는 것 같다"(변진일 주간문춘 편집장).

실업자는 매일 1만명 규모로 늘어나 지난5월말 1백50만명에 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미취업자를 합칠 경우 실업자는
4백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농업 인구를 제외한 노동 인구는 1천2백만명이다.

3분의1이 취업하지 못하는 무서운 상태다"(지동욱 경제평론가)

국가 위기에 대응해 각가정에서 "금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또 수입 혈액을 절약하기 위한 "헌혈 캠페인"까지 벌어졌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는 18가지 이유"를 쓴 모모세 다다시
도멘 서울지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국난을 필사적으로 호소하고 있으나
국민은 국가의 지갑 사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경제위기를 코미디화하고 있을 뿐 진지함이 없다.

금모으기 운동이나 헌혈캠페인도 일시적이어서 지금은 벌써 중단했다.

한국인은 정말 싫증을 쉽게 낸다"며 탄식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벌써 경제위기를 과거의 일이라고 여기는 여유마저
엿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98년 1.4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3.8%이다.

한국경제는 낭떠러지를 밧줄타기로 건너고 있는 중이다.

만약 한국경제가 나락에 빠질 경우 일본 경제는 어떻게 될까.

대부분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규모가 한국의 10배나 되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부분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말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한.일 조세협정이 2000년에 개정돼 일본 수출기업의
과세 범위가 좁아지고 원약세는 일본에 커다란 투자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문제의 초점은 산업별 영향일 것이다.

우선 한국과 일본이 경합하고 있는 석유 화학을 보자.

"한국은 90년대 들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일거에 일본 생산능력의 70%까지
확충했다.

한국의 산업기반이 약해지면 이는 일본으로서는 플러스다"(소원춘언 다이와
종합연구소 주임연구원)

다음은 경합이 치열한 조선.

"한국은 원약세지만 일본도 엔약세다.

한국은 신용력이 떨어져 제품 완성시점까지 도산할 위험이 높다.

따라서 수주 경쟁은 일본에 유리하다"(소원춘언 " )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반도체 제품장치 메이커의 대한 매출이 30~40%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메이커에 주는 영향은 거의 없다.

한국은 신규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에 2~3년후에는 체력이 매우 약화될 게
분명하다"(소원춘언 " )

산업의 어머니인 철강은 어떤가.

"한국은 중급제품을 팔고 고부가 제품은 일본에서 수입한다.

한국에 고급품을 수출하는 일본 철강메이커는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대미 수출에서는 경합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괜찮다"
(소원춘언 " )

한때 승천하는 용이라고까지 칭찬받던 한국 경제는 왜 이렇게까지 침몰하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김영삼 전대통령의 무능 무책이다.

그는 실속 없이 규모가 큰 나라를 지향했다.

여기에 재벌의 문어발식 오너 기질이 합쳐졌다.

큰 것은 좋은 것이라거나 얼마든지 돈을 빌린다는 "도박경영"체질 만큼은
일본의 빠찡꼬 오너와 결코 다르지 않다"(싱크탱크 어낼리스트)

최대의 문제는 재벌의 재무내용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재벌은 상호 보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다.

결국 1개사가 부도를 내면 그룹 전체가 연쇄부도를 낸다.

작년 1년간 30대 재벌중 7개재벌이 무너진 것도 이 때문이다"( " )

한국의 산업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경제가 궤도에 오른 것은 75년부터다.

한국의 발전에 힘을 빌려준 것이 일본이다.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은 전부 일본의 자금과 기술로 건설됐다.

그러나 여기에 두가지 결함이 있다.

하나는 한국의 산업이 가공산업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원재료와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한 것을 미국과 동남아시아에
수출하는 구조다.

두번째는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엔화의 시세에 따라 한국 경기가 심하게
좌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천촌태랑 경제평론가)

더욱이 "뒷문의 늑대"인 중국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은 94년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경쟁력이 급속히 높아졌다.

거기에 "95년 이후의 엔약세로 한국기업은 대타격을 받았다.

레벨이 높은 분야는 엔약세로, 레벨이 낮은 분야는 위안화로 공격을 당한
것이다"(좌화융광 교토대학경제연구소장)

건국 이후 이같은 최대의 위기에 대해 정치가도 관료도 "회생의 시나리오"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본과도 같다.

"김대중 정권에는 경제를 아는 관료가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이 진정한 비극이다.

그 증거로 김대중 정권은 단 하나도 유효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IMF와의 협상도 단순히 영어를 할 수 있는 일본에서 돌아온 관료가 IMF가
말하는대로 했을 뿐이다"(천촌태랑 경제평론가)

게다가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노동운동만은 활발하다.

"한국에는 한국노총(조합원 1백26만명)과 민주노총(60만명)의 2대 노조가
있다.

김영삼 정권이 노조를 방임한 결과 임금은 매년 10~17% 상승했고 인건비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고 말았다"(천촌태랑 경제평론가)

최근엔 "김대중 6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IMF는 한국정부에 대해 세수증가와 법인세 인상, 세출의 10% 삭감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실업자가 1백50만명이나 된 지금 정부에는 실업보험에 충당할
예산마저 없다.

과격한 노동운동은 일거에 반정부 운동으로 변할 수 있다.

설령 김대중 정권이 6월 위기를 넘긴다 해도 "7월위기" "8월위기" 등으로
연장되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서울주재원)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불신은 다시 높아지고 디폴트 악몽은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