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위기는 개발도상국 발전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비슷한 사례중 하나일 뿐인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위기는 전세계 회교권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근대화 노력이 기독교를 중심으로한 국제 자본의
힘에 굴복하고 말았고 이것이 동남아 위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토플러는 그러나 회교세계의 굴복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며
회교국들의 근대화가 세계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엘빈 토플러의 특별 기고를 정리한다.

< 정리=장규호 기자 ghch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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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위기와 관련해 세가지 역사적 테마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첫째는 국제교역과 경제발전의 중심지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해온
장기적인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둘째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확산되고있는 민주주의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태를 통해 나타난 피플파워는 서구식 민주 정치의 확산을
의미하는가.

이런 문제가 어떤 식으로 결론나느냐에 따라 21세기의 모습은 상반되게
나타날 것이다.

세번째 문제가 오늘의 주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경제의 몰락이 회교와 회교사회
전반에 강력하고도 장기적인 충격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비회교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구의 많은 비회교도들은 "회교"란 말을 "아랍" "중동" 등과 동의어로
생각한다.

그러나 수십억명에 달하는 전세계 회교도의 3분의 2 이상이 아시아에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 한 나라의 회교도만 해도 아랍국 전체를 합친 숫자보다 더 많다.

회교는 아라비아반도에서 발원했지만 회교도는 아랍인이라기 보다
아시아인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는 아시아 회교의 특징을 이같이
설명한다.

"아시아 회교도들은 도둑의 손발을 자르기 보다 경제성장을 이루고 빈곤을
추방하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정보혁명을 추진하고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일이 회교도에게도
어울릴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마하티르 총리와 안와르 부총리가 이끄는 말레이시아는 회교도들을
과거보다 미래에 주목하도록 해왔다.

말레이시아는 "제3의 물결"이라 할수 있는 "기술정책"을 추구한지 10년도
안돼 고무 목재 주석 등 원자재를 수출하는 나라에서 반도체칩 수출국으로
변신했다.

아시아가 위기에 휩싸이기 전,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고의 멀티미디어
환경을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최강국 창조"를 목표로 내걸었다.

물론 금융위기로 그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말레이시아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조직의 전산화, 첨단통신매체를 이용한 의료활동, 세계 멀티미디어대학,
스마트 스쿨 등을 이뤄 나간다는 계획이다.

2억 회교도를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비슷한 역사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지난 65년 집권이후 군부의 지원아래 종교의 구속에서
탈피한 세속국가를 건설해 왔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제학자와 테크노크라트 그룹(미 버클리대학출신이
많아 "버클리마피아"라고도 함)을 중심으로 그는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뤄
냈다.

부정부패와 족벌정치를 낳긴 했지만 성공적인 경제성장은 충분히 평가
받아야 할 부분이다.

수하르토는 자신이 회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도와 개신교도는 물론
화교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들과 군부를 연결함으로써 수하르토는 회교도들의 정치적 욕망을
잠재웠다.

수하르토는 군부의 힘을 견제하는 카드로 회교를 활용했다.

지난 90년 그가 이슬람지식인연합(AIT)의 결성과 인도네시아 최초의 회교계
신문인 레퍼블리카의 창간을 지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수하르토에 의해 천거된 AIT 의장과 레퍼블리카 사장은 바로 그의
심복이자 과학기술부 장관이었던 하비비였다.

하비비는 항공산업을 일으키길 원했다.

수하르토의 도움으로 4억달러를 쏟아부은 하비비는 결국 지난 95년 50석
규모의 소형 항공기를 개발했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오는 2004년까지 제트기를 생산하겠다고 공언했다.

"제2의 물결"인 산업화단계를 거쳐 인도네시아는 많은 기술자들을 길러냈고
폭넓은 기술발전을 위한 베이스를 탄탄히 다졌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에는 중산층이 크게 늘어났고 VCR 셀룰라폰 PC 등의
시장도 커졌다.

인터넷 사용자도 마찬가지로 크게 증가했다.

상징적인 예가 자카르타 시내의 전자상가인 "글로독"이다.

이곳은 도쿄의 전자제품메카인 아키하바라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급속히
성장했다.

"제3의 물결"의 싹이 틔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글로독은 이번 인도네시아 사태를 통해 완전히 황폐화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교와 과학및 기술이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갈 것인가다.

많은 서구인들은 인도네시아 회교와 과학 기술간의 갈등을 운명적인
것이라며 조롱해 왔다.

일부 서방 언론은 하비비에게 첨단기술로 경제개발에 나서는 꿈을 포기
하라고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피터 파셀이 "첨단 기술 산업으로 발전
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한 것은 진정한
충고라 할수 있다.

오늘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종교지도자들마저 극단주의는 배격
한다.

인도네시아 회교근본주의자 그룹인 "울레마"를 이끌어온 압둘라만 와히드는
여성평등, 인권, 종교적 관용 등을 강조하는 글을 써왔다.

반수하르토 진영의 선두에 선 아미엔 라이스가 와히드의 자리를 이어
받았지만 그는 충분히 개혁적이며 특히 "회교국가"에 반대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 회교 선동가들도 나타날 것이고 이들이 과격분자들을 부추길
수도 있다.

서구비평가들은 시카고대학 교수이자 파키스탄의 국립 회교 아카데미
회원인 파셀 레만이 "말레이어족 회교도들이 21세기에 회교의 부흥을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말의 뜻을 모를 것이다.

사실 아랍인들은 지나간 회교세계의 영화를 이야기하지만 아시아 회교도들은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첨단기술개발에 거는 기대를 비웃는 사람들은
아랍이 어떻게 주저 앉았는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랍 각국은 70-80년대를 통해 오일 달러를 엄청나게 끌어모았으나 회교
세계를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아시아 회교지도자들은 그동안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나 되는 회교도들이
어떻게 해서 세계경제의 변방에 있는가"라고 개탄해 왔다.

그러나 말레이인들은 식민지에서 독립한후 지금까지 생활수준 향상, 중산층
확대, 자립적 현대 경제로의 이행 등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온건 회교노선과 과학기술의 결합이라는 말레이인들의 이상은 아랍세계가
이루지 못한 꿈을 어느 정도 실현해 가고 있다.

동남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체 회교세계의 개혁방향을 바꿀수도 있고
유대교와 회교의 대립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만약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꿈이 이번 경제위기로 무너진다면 회교
사회의 경직성과 후진성은 더이상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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