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장 높은 건물로 통하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3.1빌딩.

산업은행 본점이 있는 이 건물엔 요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9명의 임원이 사표를 낸 상태에서 파격적인 인원감축과 조직슬림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 직원으로서 신분을 철저히 보장받았으나 이제 치열한 적자생존의
장으로 뛰어든 산업은행 사람들.

세계시장에 몸을 던져 승부를 걸겠다는 경영목표.

이근영 총재가 지난 4월말 취임하면서 생긴 변화다.

이 총재는 한마디로 "개혁전도사"다.

지난 96년 8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취임한뒤 보수성이 강한 금융기관에선
보기 드물게 강력한 경영혁신을 단행, "경영혁신대상 최고경영자상"을
수상했다.

산업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총재의 일성도 "경영혁신"이었다.

신속하고 단호하면서도 일단 결정되면 밀어붙이는 뚝심까지 갖췄다는
평이다.

이 총재는 예상대로 지난달 혁명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연내 5개 자회사중 2개사는 폐쇄하고 2개사는 합병하는 한편 본부조직은
26%를 감축하는 강도높은 것이었다.

이는 정부의 공공부문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이 총재는 자회사에 지나친 희생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초지일관
했다.

산업은행은 지난 3월말 자회사인 산업증권에 1천5백억원을 추가 출자하고
후순위채 1천5백억원을 매입해주기로 약속하는 등 3천억원 규모의 증자를
통해 회생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그러나 이 총재는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며 정리쪽으로 결단을
내렸다.

산업선물도 선물거래소의 입지가 확정되지 않아 개설이 지연되고 있는데다
시장규모를 예상하기가 어려운 점이 감안돼 폐쇄됐다.

한국산업리스와 한국기술금융은 산은의 출자지분이 각각 33.2%와 73.4%인
업체.

산은은 두 회사를 합치면서 일부 출자전환 등을 통해 회생을 도모하기로
했다.

여신전문기관으로 전문화를 꾀하면서 대형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조직재편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직급별 정년제 도입.

한 직급에서 일정기간 승진을 못한 직원을 자동적으로 은행에서 내보는
것으로 사기업들조차 아직 도입하지 못한 제도다.

명예퇴직하는 사람 못지 않게 남은 사람들에겐 적자생존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 연봉제를 전제로 한 성과급제, 직위.직급의 분리 운용을 통한
발탁승진제 도입을 선언, 그동안 안정적이고 연공서열에 의해 승진이
이뤄지던 공공분야의 오랜 관행을 파괴한 것이었다.

이와함께 산업은행은 부실채권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리를 위해 부실기업
구조조정특별기획단을 설치하는 등 더욱 우량한 은행으로 변신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6월말까지 화의나 법정관리 인가업체에 대한 채권의 매각방안, 정상화
가능기업 지원방안 등 다각적인 부실채권 정리방안을 수립해 시행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산은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올해와 내년에 각각 1조원씩 2조원 규모의 증자를 추진할 계획이다.

< 허귀식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9일자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