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

공공부문 개혁의 칼을 쥔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이 경제관료 선배인 모
공기업 K사장을 만났다.

"K선배, 새 정부가 공기업 사장에게 준 임무는 분명합니다. 구조조정입니다.
별탈없이 지내면서 노조의 인기나 끌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세요"

순간 소주잔을 받아들던 K사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기획예산위원회의 진위원장은 물론 이계식 정부개혁실장 등 주요 간부들은
연일 조찬 오찬 만찬시간을 이용, 공기업 간부들을 만나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충고다.

기획위 관계자는 "공기업이 스스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나서는 경우
기획위의 경영혁신 방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유리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19일 오후.

한국전력은 이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전무급 집행간부 세자리를 없애 버린 것이다.

한전 창사이래 직제가 감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새사장이 취임한 다음날 인사가 이뤄진 것도 드문 일이었다.

집행간부 직제가 줄면 아래 직급도 줄게 마련.

본부 처장급 8자리도 감축됐다.

잉여인력은 현장으로 전환 배치된다.

한국관광공사도 강력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지난달 29일 이사회에서 5개본부를 3개본부로 줄였다.

사무직은 20%, 영업직은 5%를 줄이는 내용의 구조조정안을 확정했다.

가스공사는 이보다 앞서 올해초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지난해 시행된 공기업 민영화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나머지 공기업들도 구조조정을 구체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군살빼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곁가지 사업들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공기업 본래 기능에만 충실하면 방만한 경영을 방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전이 정보통신 분야 사업지속여부를 재검토키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투자우선순위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신규사업은 착공을 대부분 보류해 놓고 있다.

고용창출이나 중소기업 지원효과가 큰 사업 정도만 예외로 인정될 뿐이다.

공기업 자회사들도 개혁의 무풍지대일 수는 없다.

본가에서 큰일 처리하느라 분주한데 작은집이라고 조용할 리 없다.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자회사 처리 방안을 연구중이다.

6월말까지는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하지만 원칙은 이미 수립돼 있는 듯하다.

업무영역이 겹치는 자회사들은 조직감축및 편입을 통해 정리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공기업들의 대변신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작용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기업은 태생적으로 공익과 이윤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자칫 한쪽에 치우치면 문제가 생겨난다.

공기업들이 취급하는 재화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주택 토지 전력 통신 가스 석유등 대부분이 그렇다.

이윤추구가 절대 과제가 되면 혜택의 편중성은 불가피하다.

예컨대 몇가구밖에 안되는 산골지역에는 전력을 공급할 이유가 없다.

투입비용과 생산성을 감안할 때 그렇다.

공기업 경영효율성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불가피한 현상이다.

정부는 공기업을 민영화할 경우 수익성 비중이 높은 곳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감안한 조치다.

공기업들 대부분도 문제 인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혁신이 공기업 생존의 문제로 다가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따라서 과도하게 강제된 경영혁신엔 부작용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IMF체제라는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길, 이것이
바로 공기업 대혁신의 본질이다.

< 박기호 기자 kh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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