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달 전으로 기억된다.

여러 신문에 큼직하게 실린 사진 한장 때문에 참으로 민망했고 아직도
당혹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어느 남자 대학생이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땅바닥에 모아 버려진 외제
학용품 위를 껑충껑충 뛰면서 짓밟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 학생은 나름대로 애국심을 표현하고 있었으리라.

이 사진을 크게 보도한 신문들은 우리 경제에 밀어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외제 학용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검약의 미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왜 국산보다 외제가 선호되는가를 살펴보고 소비자 입장에서 우리
생산기업에 그 차이를 지적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진과 같은 배타적인 몸짓을 절제없이 행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슬픔을 느끼게 할 만큼 병들고 허약해 보인다.

요즈음 노사관계가 매우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사분규에 익숙한 서방언론이나 외국투자자들도 지금 우리와 같은 경제
상황에서의 이러한 사태를 깊은 우려속에서 의아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기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한 합리적 행동이라기보다 공멸의 결과를
마다하지 않는 자기파괴적인 행동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처럼 일련의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인상을 주는 사건들이 세계속에서
우리의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입지를 크게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볼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고보면 한반도 북쪽에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폐쇄적이고 자학적이기까지 한 독특한 체제는 그곳의 지도자 몇몇 사람의
이념 때문에 생겨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들 안에도 잠재하고 있는 일그러진 자화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 엄낙용 kcstop@customs.g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