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1일.

투자자들은 "현대" "삼성"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재무제표를 보게 된다.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삼성생명등 계열사의 개별 재무제표가 아닌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의 결합재무제표다.

현대나 삼성뿐만이 아니다.

공정거래법상 30대 그룹은 모두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해 공개해야 한다.

결합재무제표는 대기업그룹을 꿰뚫어 보는 "내시경"이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계열 및 관계사들의 자금거래를 한눈에
파악할수 있다.

현대증권과 현대자동차가 어떤 거래를 했는지, 삼성계열 금융기관이
삼성전자에 얼마의 자금을 대여했는지 단번에 알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자들은 그룹 차원의 자금흐름과 그중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재무현황을
결합재무제표라는 "내시경"을 통해 속속들이 볼수 있다.

결합재무제표가 등장하면 기업 회계장부의 거품이 빠질 것으로 기대된다.

결합재무제표에서는 모든 내부거래가 제거되기 때문이다.

현재 작성하고 있는 개별사 재무제표에서 흑자가 발생했더라도
결합재무제표에선 결손금(적자)이 나타날수 있다.

특히 재고자산계정 토지계정 장기차입금계정 이익잉여금계정 이월결손금계정
등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홍길동 그룹의 A사가 같은 계열인 B사로부터 사들인 2천만원의
물품중 1천만원어치가 재고로 남았다고 생각해 보자.

B사는 2천만원을 판 것으로 장부에 올린다.

A사는 매출로 1천만원을 잡고 나머지 1천만원은 재고자산으로 기재한다.

홍길동 그룹은 전체적으로 3천만원 매출에 1천만원 재고자산을 기록한다.

그러나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면 홍길동 그룹은 1천만원 매출에 1천만원
재고자산만 남게 된다.

즉 B사의 매출액 2천만원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금흐름을 "결합"하게 되는 기업의 수는 얼마나 될까.

증권감독원의 추정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2백43개, 현대그룹은 1백64개,
LG그룹은 1백45개, 대우그룹은 2백49개나 된다.

30대 그룹의 경우 한일그룹이 20개로 가장 적다.

다른 그룹들은 대부분 30개 이상이다.

이 정도면 한국의 주요기업은 대부분 "결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결합재무제표는 매우 특수한 회계장부로 간주된다.

특수한 만큼 정의도 아주 어렵다.

국제회계협회(IAS)는 결합재무제표를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동일인에 의해
사실상 지배되고 있는 기업들을 하나의 경제적 실체로 파악해 작성하는
재무제표"라고 설명해 놓았다.

여기서 핵심단어는 "사실상 지배"라는 말이다.

형식적인 지분출자관계를 따질 필요없이 사실상 경영권을 쥐고 있는
기업이라면 모두 다 결합대상이라는 것.

마치 한국의 대기업그룹을 겨냥한 듯한 정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은행감독원에 따르면 30대 대기업의 경우 결합재무제표의
적용대상은 연결재무제표 대상보다 2배나 더 많다.

"사실상 지배"로 얽어맨 기업이 많아진 것이다.

이처럼 "그룹의 속살"을 다 드러낼 결합재무제표의 도입은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회복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다.

90년대 중반까지 세계 각국은 지분율을 기준으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
왔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기업집단의 재무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실질지배력을
중심으로 재무제표를 재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최근들어 많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90년대 중반이후 실질지배력을 기준으로 한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다.

미국도 99년부터,일본은 2000년부터 현행 지분율 기준의 연결재무제표에서
실질 지배력 기준의 결합재무제표로 전환키로 방침을 세웠다.

한국의 경우도 결합재무제표의 의무화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연결재무제표로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기업의 재무현황을 제대로 알수
없기 때문이다.

연결재무제표로 오히려 부정확한 기업내용만 양산되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였다.

때마침 IMF사태가 터지고 기업회계의 투명성이 국가과제로 떠오르자
결합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된 것이다.

지난 2월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외감법이 개정되면서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결합장부시대"를 연 것이다.

그러나 결합재무제표의 경우에도 한계는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동춘 현대경제연구소 경영분석실장은 "완전성과 투명성을 높일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한다"면서도 "회계기준과 작성방법이 제조업체와 딴판인
금융업종과 해외현지법인도 포함시키기 때문에 혼란이 올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박준동 기자 jdpowe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