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일 뉴욕에서 한국투자 국제세미나를 연뒤 이어
3일엔 윌버 로스 로스차일드 회장과 김중수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장의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으로 뉴욕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특별대담은
"한국경제의 구조개혁 진단"이 주제였다.

이날 대담에서 로스 회장은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이 호전되고
있지만 이제 시작단계"라며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조속히 진행돼야
하며,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대량 정리해고에 대한 사전준비를
갖추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기업과 금융계의 투명성 문제와 관련, "이 기회에 한국 기업들도
회계기준을 작성방식을 국제화하는 것이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채 미국식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만큼 이 대목에서는 한국정부와 기업들의 설득노력이 있어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특별대담의 내용을 소개한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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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수 원장 =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이후 일련의 구조개혁 작업을
추진해 왔지만 미국 투자자들의 반응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 경제계의 이해가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 윌버 로스 회장 =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미국인들은 아시아를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서 인식했던게 사실입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가 다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지요.

어떤 면에서는 이번 외환위기로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갖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다만 한국의 진면목을 인식하는 데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정도에 불과
하다고 봅니다.

지금같은 때야 말로 한국 경제계가 해외에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에 발벗고 나설 호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방문의 첫 기착지로 세계의 금융수도인
뉴욕을 택한 것은 시의적절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 대통령의 뉴욕 방문을 전후해 한국기업과 정부기관들이 대규모 투자
설명회를 연 것도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봅니다.


<> 김 원장 = 한국경제의 취약 요인으로 "투명성 부족"이 가장 많이 지적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행태는 수십년 전부터 나름의 일관성을 갖고 지속돼온 것인
데도 요즘들어 부쩍 투명성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 로스 회장 = 경기가 좋을 때는 웬만한 결점은 덮여지게 마련이지요.

그러다가 외환위기가 닥치자 가려져 있던 약점이 두드러져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투명성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 차이에도 기인한다고 봅니다.

통합적으로 재무를 관리해 온 미국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확실히 한국쪽이
덜 투명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숨겨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김 원장 = 말씀하신대로 회계 기준을 미국식의 결합재무제표로 바꿔야
투명성 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데는 한국 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계기준을 바꾸는 것 만으로 투명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지요.


<> 로스 회장 = 결합재무제표가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지급보증 관행을 시정하는 일입니다.

상호지보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계열사가 부도위기에 빠지거나 재무
구조가 악화될 경우 경영이 건실한 다른 기업까지 발목을 붙잡게 된다는
점입니다.

개별기업의 차입능력을 분석해 그 범위 내에서 자금을 조달하도록 제도를
바꾸는 작업이 긴요합니다.


<> 김 원장 = 상호지보의 대안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 로스 회장 = 자금조달 패턴을 보다 선진화해야 합니다.

은행으로부터의 간접금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증권시장을 통한 직접
금융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얘기지요.

사실 한국경제의 최대 모순 중 하나는 저축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이자율
이 왜 그리 높으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과 더불어 저축률이 세계 정상급인 일본은 이자율이 연 1%선인 반면
한국은 17%나 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현상입니다.

그 까닭은 기업들이 은행차입에 너무 매달려 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업들이 간접 금융에 치중하다 보니 수익성 보다 외형 성장에 치중하는
부작용도 생겨난 것이지요.

직접금융을 늘려 재무구조를 개선해 나가면 자연히 은행 금리도 낮아질
것이고 상호지보의 필요성도 줄어들 것입니다.


<> 김 원장 = 한국 정부는 최근 대기업들에 지주회사를 허용키로 했습니다.

지주회사가 설립되면 대기업에 대한 "재벌" 시비가 불식되고 상호지급보증
관행도 해소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로스 회장 = 맞는 얘깁니다.

덧붙여 지적한다면 은행들의 경직적인 담보대출 관행이 상호지급보증을
조장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 같은 고정자산 만을 담보로 요구하다 보니 담보여력이 부족한
기업들로서는 계열사들의 보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 기회에 은행들도 증권이나 재고자산 등으로 담보 대상을 다양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김 원장 = 한국 재계의 구조조정 작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려면 계열기업
을 해외에 매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자산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됨으로써 오히려
순조로운 정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로스 회장 = 한국 기업들의 자산가격이 상당히 저평가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례로 한국 증시에 상장돼 있는 기업주식의 싯가총액이 5백여억달러에
불과합니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2백50여역달러만 가지면 특정 외국기업이 모든 한국기업
의 주식을 51%이상 확보해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는 웬만한 미국기업 1개의 자산과 비슷한 액수입니다.

실제로 10여년 전에 미국의 한 담배 회사가 2백50억달러에 팔린 적이
있지요.

그러나 기업을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기업과 주변환경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실패로 끝나기 십상
입니다.

한국인들 만큼 한국의 기업환경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 등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한국기업에 투자
하는데 그쳐야지 마구잡이로 기업을 사들여서는 곤란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도 많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 김 원장 = 한국인들의 "외국인 기피증"이 외자 유치를 저해하는 걸림돌
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렇다고 보십니까.


<> 로스 회장 = 외국자본의 집중유입에 대한 경계심리는 어느 나라 어느
국민들에게나 다 공통된 현상이라고 봅니다.

미국에서도 80년대 후반 일본의 미쓰비시가 록펠러 센터를 사들이자
"미국의 혼이 팔려 나갔다"며 큰 소동이 빚어지지 않았습니까.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한국인들을
자극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더구나 한국 고유의 문화적 토양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미국식"만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 김 원장 = 한국이 구조개혁과 관련해 가장 서둘러야 할 과제는 무엇
이라고 봅니까.


<> 로스 회장 =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들 하는데 그에
앞서 선결돼야 할 것은 대량 정리해고에 따른 실업자 문제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중도해고가 흔치 않았던 만큼 실직자들이 받을 충격은
미국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클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부의 몫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과 협의해 실업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
를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업들도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김 원장 = 한국의 구조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의 부실
자산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돼야 합니다.

과거 비슷한 경험을 했던 미국이나 멕시코의 경우에서 어떤 시사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 로스 회장 = 80년대 멕시코 정부가 은행들의 부실자산 4백여억달러를
인수해 경매 방식으로 처분한 적이 있는 데 한국에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멕시코 정부도 처음에는 은행들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내버려 뒀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기미를 보이자 과감하게 개입했습니다.

미국도 80년대 중반의 저축대부조합 부실사태 당시 금융보험공사(RTC)를
통해 비슷한 조치를 취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 하며 금융기관들의 부실대출 자산을
증권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장 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 김 원장 = 언제쯤 한국이 IMF 관리체제에서 졸업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까.


<> 로스 회장 = 개혁 자체도 중요합니다만 위기 탈출의 최대관건은 심리적
측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은 과연 투자할 만한 나라"
라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시기적으로 적절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직접 앞장서고 장관들과 기업인들이 나서서 한국의 개혁 이행
상황을 외국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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