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멀리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국의 외환위기는 정부의 "암묵적" 보증을 담보로 민간기업들이 해외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인 차입경쟁이 발단이 됐다"며 "이를 제재할 엄격한
"인센티브-페널티제도"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경영과 인센티브"를 주제로 한 강연(한국경제신문사 주최)을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던 멀리스 교수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특별대담을
가졌다.

그는 "IMF는 외부자(Outside Body)일 뿐"이라며 "한국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외부자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앤드루 케이니 BCG 한국지사 부사장이 사회를 맡은 이 대담에는 데이비드
영 BCG 공동 한국지사 사장, 토머스 루이스 BCG 아.태지역 총책임자, 한양대
나성린 교수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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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경영과 인센티브 ]]


<> 케이니 부사장 = 오늘날 금융시장에서의 정보흐름은 매우 중요하다.

아시아 외환위기도 정보가 충분치 않았거나 왜곡된데서 기인했다는 주장이
많다.

한국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생각된다.

멀리스 교수는 그동안 정보의 유통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 멀리스 교수 = 한국은 대내외 충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정보의 유통이 원할하게 이뤄지지 않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당시 한국 정부는 외환보유고가 얼마인지 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정부가 대출과 관련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보증을 선 것도 문제
였다.

이같은 정부보증 덕분에 외국 대출기관들은 부실대출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부실대출에 따른 리스크를 자신들이 짊어지는게 아니라 타인에 전가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떤 행위에 상응하는 "인센티브-페널티제도"가 결여돼 있었던
것이다.


<> 케이니 = 한국상황에 매우 적합한 지적인 것 같다.

한국의 경우 정부와 민간기업간 그리고 정부와 금융기관간 묵시적인 보증
관계가 오랫동안 이뤄져 왔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금융기관과 대기업그룹들이 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돼 왔다.


<> 멀리스 = 한국 정부는 외환위기 이전의 차입자 위치로 돌아가려고 무척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것이 있다.

민간기업들이 스스로 차입금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려는 작업과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할 경우 외환위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영 사장 = 외부에서는 한국이 그동안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이같은 고속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믿어 왔다.

민간기업들도 이같은 고성장의 환상에 빠져 무분별한 차입경쟁을 벌여 왔다.


<> 멀리스 = 동감이다.

지난 수년간 탄탄한 성장세를 지속해온 한국 경제를 지켜 보면서 그렇게
믿지 않았던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시돼 왔다.

성장률에 현혹돼서는 안된다.


<> 케이니 =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은 한국의 민간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금융을 조달하는데 문제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 멀리스 = 정부 "보증"만 믿고 돈을 빌려주는 과거와 같은 상황은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의 차입이자는 이미 오를대로 올랐다.

차입이자의 상승은 한국경제의 치부가 속속 밝혀지면서 대출위험도가
높아진데 따른 적절한 추가부담으로 봐야 한다.


<> 나 교수 = 높은 이자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과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 금융기관들의 신뢰가 크게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 케이니 = IMF가 요구하는 경제개혁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과연 IMF의 개입이 금융위기국의 경제위기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오히려 해가 되는지 궁금하다.


<> 멀리스 = IMF의 개혁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IMF를 자식의 일을 일일이
간섭하는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다만 구제금융을 지원한 "금융기관"으로서
평가하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때 IMF는 한국의 국제 신용도를 하루빨리 회복시켜야
하는 책임을 맡았으며 이를 위해 엄격한 개혁프로그램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IMF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도 갖고 있다.

IMF는 한국의 사정을 꿰뚫지 못하고 있는 일종의 "외부자(outside body)"
이다.

이런 외부자가 "이래라 저래라"며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것이 과연 금융.
경제위기회복에 도움이 되겠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 루이스 부사장 = 구제금융을 받은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각국 정부가
IMF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정부는 국민들에게 "IMF는 응석부리는 아이를 잡아가는
도깨비(bogeyman)"라는 인식을 심어줘 경제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 멀리스 = 한국이 단지 아시아의 일부라는 국제사회의 인식 때문에 더
고통을 받은 면도 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라고 하면 한덩어리로 생각해 어느 한 곳에서 외환위기
등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 케이니 = 같은 생각이다.

최근들어 사람들은 아시아국가, 특히 금융위기국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과 태국이 위기에서 회복하고 있는 반면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상황이
불투명한 것으로 구분지어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 나 교수 = 영국은 지난 70년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구제금융을 받은 경험이 있는 나라로 한국 등 아시아국가들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 멀리스 = 아쉽게도 영국의 경험에서 배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은 외국자본에 등에 상당한 양보를 했고 강력한 노조와 높은 인플레
때문에 한국과는 전혀 다른 여건에 처해 있었다.


<> 케이니 = 외환위기이후 한국 정부는 시장개방 등 경제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 멀리스 = 정보의 공개, 시장투명성 부문에서 큰 진척을 이룬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외국기업에 의한 한국기업 M&A(인수합병)을 적극 허용하는 등 시장개방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매기고 싶다.


<> 영 = 한국기업 M&A에 먼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쪽은 이미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들이다.

문제는 다음 단계인데 아직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외국기업들이 한국시장
으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기존의 기업들과는 다른
차원의 좀더 명확하고 투명한 시장정보를 얻고 싶어한다.


<> 멀리스 = 투명성 문제와 관련해 원칙에는 동의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통적으로 기업들은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본능"을
갖고 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야 좋은 일이겠지만 고급정보들이 자칫 경쟁자의 손에
넘어갈 경우 해당기업에 치명적일 수도 있어서다.

문제는 "인센티브-페널티제도"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투명성이 높고 재무구조가 튼튼한 기업에는 대출금리를 낮춰
주고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 루이스 =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낮다는 것은 곧바로
차입이자상승으로 이어져 금융조달비용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케이니 =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관련해 대기업그룹의 지배구조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서둘러 사외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 멀리스 = 기업 지배구조는 흔히 경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사외이사제도의 경우 경영자들의 경영폐단을 막아 주주들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대부분 미국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다.

물론 주주의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척이어서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이유도
있다.

이들 기업들은 또 중요한 경영전략 결정에 있어서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검토작업을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식 사외이사제도를 성급하게 흉내내 베끼는 것은
반대이다.


<> 케이니 = 이제 정리하는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토론을 요약하고 향후
한국경제의 앞날을 진단하는 것으로 토론을 마감했으면 한다.


<> 멀리스 =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국경제와 기업들은 지금껏 지나치게
부채에 의존한 성장위주의 전략을 구사해 왔다.

최근 기업환경이 급속히 변하면서 더이상 이같은 경제구조가 먹혀들 수
없게 됐다.

정부의 보증에 의존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기업들도 성장위주가 아니라 수익성위주의 알찬 경영을 추구할 때가 됐다.

한국경제의 앞날은 밝다.

펀더멘털 자체가 매우 양호하며 통화가치하락으로 수출여건도 나아졌다.

무엇보다 우수한 노동력이 한국경제의 앞날을 보장해 줄 것이다.

< 정리=김수찬 기자 ksc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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