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아침 6시30분.

이른 시간인데도 1백60명의 기능인력들이 서울 목동 기독교방송국옆에
있는 중소기업유통센터 공사현장에 모였다.

안전헬멧을 쓴 이들은 한참 치솟는 철골조옆 대형크레인 아래서 하루
공사계획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공사는 4~5층 철골바닥 용접과 7층 H빔 조립등.

맑은 아침공기속에서 철골 용접 철근 등 여러분야의 기능인들은 열심히
질문을 해가면서 작업내용을 챙겼다.

이들은 5분간 맨손체조를 한 뒤 곧장 자기가 맡은 현장으로 향했다.

시간은 아침 6시 55분.

유통센터 공사를 맡고 있는 경남기업의 유기정 현장소장은 "IMF이전엔
지금 이 시간에 출근하는 기능인력이 한두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7시까지 출근토록 했음에도 7시30분은 돼야 다 모였다는 것.

그러나 지난 3월부터 아무런 지시가 없었는데도 저절로 모두의 출근시간이
1시간정도 당겨졌다는 것이다.

이는 공사에 투입되는 인원을 전보다 3분의 1정도 줄이면서 나타난 현상.

출근시간이 빨라지긴 했지만 이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중진공으로선
그동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현공정에서 2백40명을 투입해야 하는데 1백60명밖에 투입할 수 없어
공사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서다.

IMF이전부터 이미 공사진척이 한달정도 늦어져 있는데다 인력까지
줄였으니 완공시기는 3개월정도 더 늦어질 판이었다.

1천2백억원으로 연건평 2만3천평의 건물을 짓고 시설을 설치하려면
내년 연말에도 개점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걱정은 기우에 그치고 말았다.

이날 현장에 나온 최홍식 중진공 부이사장은 "지난 3월 구조조정이후
공정이 계획보다 계속 앞서가 이대로라면 내년 9월엔 개점이 가능케됐다"고
말했다.

최 부이사장은 이같은 "바람직한 현상"이 이 공사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의 생산현장과 공사장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군포에 있는 명일금속공업도 이와 비슷한 경우.

기계부품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지난 3월초 주문량 부족으로 45명의
사원중 14명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런데 4월초 일본의 제이프로마에서 월간 3천개의 벤딩파이프를
주문해왔다.

김광렬사장은 이 주문을 받고 정말 아찔했다.

한달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인원을 줄인 것을 후회했다.

도저히 납기를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나머지 31명의 종업원이 진짜 밤낮없이 일했다.

납기를 못맞추기는 커녕 4월 29일에 모든 제품을 선적하고 근로자의
날인 5월1일부터 어린이날인 5일까지 닷새동안 전직원이 봄휴가를 즐겼다.

요즘 IMF체제 이후 누구나 어깨가 축처져있다.

이런 스테그플레이션이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몰라 한숨을 쉰다.

그렇지만 이런 비극가운데 한가닥의 희망이 엿보이는 건 바로 기업내의
생산성이 이같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들어 구로 안산 구미등 산업단지에 있는 생산업체들에서 한결같이
나타나는 근무태도가 세가지 있다.

첫째 출근시간이 저절로 앞당겨진 것.

둘째는 근무시간에 빈둥거리는 사람이 없어진 점.

세째는 현장에서 설계도면을 주면 금방 처리해낸다는 것.

이 세가지는 지금까지 짓눌려온 우리의 어깨를 조금이나마 가볍게해주는
현상이다.

이것이야말로 IMF가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 중소기업 전문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8일자 ).